‘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쟁점될 듯

금융권에 ‘노치(勞治)’ 바람이 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는 새해 들어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문제 개선에 시동을 걸고 있다. 현 정부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관해서는 타협 없는 원칙론을 고수 중이다. 지난 2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국제적으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문제에 대한 개선은 대중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회사로서 감내하고 극복해야할 책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회장 셀프연임’ 비판론에 금융지주사들 역시 관련 규정을 바꿔가는 분위기다.

◇ “경영권 승계 문제 있어”..지배구조 개편 본격화

금융지주사들은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 위원장이 금융회사 지배구조 문제의 사례로 금융지주사를 직접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사 CEO가 연임에 유리한 쪽으로 이사회를 짜는 등 연임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융지주사의 경영권 승계를 비판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금융회사의 경영권 승계절차가 더욱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사외이사 등 이사의 전문성과 책임성도 강화해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운영되도록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금융당국은 새해 초 주요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지배구조를 점검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CEO의 경영승계 프로그램이 제도적으로 어떻게 마련돼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기존 CEO가 사외이사들을 장악해 공정하지 않은 방식으로 연임하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 KEB하나·KB금융에서 불 지펴지는 변화

이러다 보니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KEB하나금융지주의 경우 최근 새로운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놨다. 크리스마스 연휴 직전 이사회를 갖고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 현 김정태 회장을 제외한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 지배구조개선안을 통과시켰다. 이사회는 또 ‘경영승계 계획 및 대표이사 회장 후보 선정절차’ 개정을 통해 CEO 후보군 선정절차와 기준을 결의하고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기로 했다. 이를 마련할 이사진들의 선임 경로 역시 연차보고서 내에 공시해 CEO 선임 전반에 걸쳐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같은 조치는 금융당국이 최근 강하게 밀어붙이던 ‘지배구조 개선 요구’와 맞아 떨어진다. 금융감독원은 앞서 지난 12일 하나금융지주에 CEO 승계 절차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이 미흡하다며 총 7건의 경영유의 조치를 내렸다.

KB부동산신탁이 부회장을 신설하고 ‘친문재인’계로 알려진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영입한 점도 크게 회자된다. 지배구조 개편에 맞서 금융당국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등용했다는 이야기가 불거진다. 금융당국이 윤종규 KB금융 회장을 흔들자 조직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쓴 카드라는 소리다. 김 부회장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했으며 부산·경남 출신 정·관계 인사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는 지난달 성명서를 통해 “케이비금융지주도 아니고 회장도 없는 계열사에 부회장직을 신설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했다”면서 “(김정민 전 사장은) 케이비에 빈 자리가 있을 때마다 자가발전을 계속해온 인물로서, 얼마 전까지 지주 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자다. 케이비의 대표적인 정치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고 짚었다. 또 “(윤종규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의) 이런 시도들이 셀프연임 꼼수에 이어 정권 줄대기를 하려는 또다른 꼼수라는 의혹을 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최대 쟁점될 듯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편이 도마에 오르자 근로자(노동자)추천이사제 도입 여부도 뜨거운 이슈가 될 전망이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최근 공공 금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권고했다. 노동이사제는 직장 내 근로자 대표가 직접 이사회 멤버로서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당시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민간 금융회사에는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건의했다. 노동자들이 추천한 전문가가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당초 노동이사제 도입에 ‘신중 모드’를 유지했던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이 권고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벌써부터 금융권 노조가 최고경영자(CEO) 선임이나 임금 인상 등에 관여하고 영향력을 더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근로자추천이사제에 대해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 의견과 다른 주주보다 노조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지난달 KB금융은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려고 했지만 외국인 주주 등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근로자추천이사제)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 세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찮다. 도입까지는 상당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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