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분양제가 도입될 경우 건설사의 운전자금 부담이 현행 대비 30~50% 증가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건축비를 조달할 수 없는 만큼 건설사의 자금부담과 금융비용이 대폭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은 결국 수요자에게 전가돼 분양가격이 최대 7%까지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한국투자증권은 30개월 공사기간을 가정한 선분양제와 후분양제의 현금흐름을 분석했다. 후분양제는 공정률 80% 시점에서 분양을, 선분양제는 입주기간 3개월에 걸쳐 잔금이 모두 납부된다고 가정했다.

그 결과 선분양제는 착공 후 약 15개월에 걸쳐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보이고, 폭은 분양가의 17% 이내로 분석됐다. 반면 후분양제는 24개월에 걸쳐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폭은 최대 65%에 달했다.

아파트 건설 자금을 자체자금이 아닌 PF 등을 활용하는 건설업 특성을 감안하면, 결국 후분양의 경우 건설사는 분양대금의 30~50%를 PF로 추가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따라서 건설업계는 후분양제 도입 시 대·중소 건설사 간 양극화가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금동원 능력이나 위험관리 능력이 없는 건설사는 자연 퇴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지금도 준공 후 미분양은 건설사의 존폐를 논할 정도의 큰 위협이다. 여기에 재무여력이 낮은 건설사는 발목이 묶여 사업 기회를 잃게 되고 반대로 재무여력이 높은 대형 건설사는 알짜 사업지를 선점하며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

현재 대형건설사의 경우 반기보고서 기준 총자산 대비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가장 많은 곳은 GS건설이다. 총자산 12조4986억원 중 현금성 자산 비중이 15.7%인 1조9608억원에 달했다. 이어 대림산업이 1조5216억원(13.5%), 현대건설 1조4263억원(11.8%), 삼성물산 1조4219억원(3.7%) 등이 1조원대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이어 현대산업개발 9006억원(18.3%), 대우건설6622억원(7.2%), SK건설 5364억원(11.6%), 현대엔지니어링 3961억원(6.4%), 한화건설 3728억원(5.7%), 포스코건설 3211억원(4.9%), 롯데건설 3088억원(6.1%) 등의 순으로 현금성 자산 재무여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견사로는 호반건설과 한신공영의 재무구조가 튼튼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기준 총자산 1조4552억원 중 현금성 자산이 4458억원으로 30.6%에 달했다. 한신공영도 1조6269억원중 21.2%(3443억원)가 현금성 자산이다.

한편 후분양제는 과거 노무현 정권 때 도입이 추진됐지만, 2008년 주택경기 침체로 폐지됐다. 크게 3단계에 거쳐 도입을 계획했는데 초기단계에서는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사업과 공공물량 중 시범지역을 선정해 사업을 선도, 활성화 단계에서는 일정 공정률 이상 분양 시 공급택지를 우선 공급하는 방식으로 민간 건설사 유입을 증대시키는 방안이 논의됐다. 정착단계부터는 후분양에 대한 선호율을 높이고 PF제도를 정착시켜 민간업체의 자율적 후분양을 유도한다는 계획이었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감에서 LH와 국토부가 '후분양제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며 "후분양제는 건설사의 자금부담과 금융비용을 증대시켜 결국 분양가 상승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적 주택부족 상태를 벗어나면 후분양제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건설사나 금융기관 등 모든 주체의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는 공급차질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민간주택에 도입되는 시기는 매우 더딜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