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현 서영대 교수 논문 "기업 브랜드 이미지 하락"
정부 '슈링크플레이션 원천 차단' 규제 지속 도입 중
"번들 상품은 소용량 선호 위한 것일 뿐" 입장도

사진=챗GPT
사진=챗GPT

제조 원가 상승과 경기 불확실성을 이유로 가격 대신 용량·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이 식품업계에 일상화되고 있다. 겉으로는 가격 변화를 최소화하는 듯 보이면서도 실질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돼 투명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운 기업들마저 구성 축소에 나서면서 브랜드 신뢰도와 가치 소비 흐름도 흔들리고 있다. 또한 이런 변화가 업계 전반의 기준가격을 왜곡시키고 장기적으로 시장 경쟁 질서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미국에서는 2023년 프랜차이즈 햄버거 회사인 버거킹이 광고 속 슈링크플레이션으로 소비자 집단소송을 맞기도 했다. 이번 기획은 슈링크플레이션의 실태와 소비자·업계·정책 당국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짚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주]

최근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들려 맥주와 먹을 과자들을 고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3개 묶음(번들)으로 파는 과자의 10g당 가격이 오히려 단품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다른 묶음 과자들도 둘러본 A씨는 "대부분의 과자는 그렇지 않은데 일부 인기 제품만 해당된다"며 "과자 제품의 3개 묶음이 당연히 단품보다 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속은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고 말했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과자 제품의 슈링크플레이션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추후 알게 되면서 기업 브랜드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제품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발행된 '한국외식산업학회지 제21권 제1호'에 실린 전도현 서영대 교수의 논문 '과자제품 구매 시 기대불일치가 브랜드 태도 및 만족에 미치는 영향–슈링크플레이션 사례를 중심으로'를 보면,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과자류 제품 6개 중 한 가지 이상을 최근 3개월 이내 구매한 경험이 있는 전국 20세 이상 남녀 내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2024년 4월 1~20일), 이같은 소비자 반응이 도출됐다.  

한편 식품 업체들은 묶음 제품의 판매 가격은 유통업체가 결정하는 '오픈 프라이스 제도'로 결정되는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제조업체들은 제조원가에 따라 정해진 공급가로 납품할 뿐, 제품의 최종 판매가는 대형 마트 등 판매처의 소관이라는 입장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묶음 상품은 소용량 포장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한 것일 뿐 g당 더 싸게 팔려는 목적이 아니다"라며 "소용량은 포장 부자재도 더 많이 들고 인건비도 더 많이 들기 때문에 개당 단가가 더 비싸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에서는 중량 눈속임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단위가격 표시 의무화가 시행되고 있다. 묶음 상품이든 단품이든 일정 g당 가격을 비교할 수 있다. 

식품 업계에서 슈링크플레이션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2014년 과자 업계의 '질소 과자' 논란이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용어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가 2015년 포장 공간비율 제한(35~40%) 등 과대포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일단락됐다. 지난 2023년 12월에는 정부의 슈링크플레이션 실태 조사를 통해 만두·맥주·소시지·핫도그 등 37개 제품이 공지 없이 용량을 줄인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정부 정책으로 식품회사 등이 제품 가격을 유지한 채 5% 이상 용량을 줄이면 소비자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규제가 도입됐다.

정부에서는 슈링크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중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슈링크플레이션과 같은 꼼수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주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이달 말 슈링크플레이션을 뿌리뽑기위한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산업통상부 국가기술표준원(국표원)은 최근 '정량표시상품 계량법 개정 방향'을 발표한 상태다. 

정량표시상품은 포장·용기 상태에서 양을 바꿀 수 없는 제품으로, 곡류·과자류·우유·조리식품 등 27개 품목이 포함된다. 이번 개정은 "표시는 맞지만 실제 양은 적은"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국표원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조사된 6985개 상품 중 21.7%가 평균적으로 표시량보다 적은 실량을 담고 있었다. 법이 정한 허용오차 안에서 제조업체가 평균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악용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국표원은 정량표시상품 검사 기준에 '평균량 규제'를 새로 도입키로 했다. 앞으로는 개별 제품이 허용오차 안에 들어도, 평균적으로 표시량보다 적으면 위반으로 본다. 또 연간 조사 대상도 현재 1000개 수준에서 1만개 이상으로 늘리고, 조사 전담기관을 지정해 사후관리 체계를 강화한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