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 "닷컴 버블 당시 5가지 경고 신호부터 살펴봐야"
"AI 관련주의 밸류에이션,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의 신호들과 유사"
주요 위험 요인으로 "기술투자 증가, 기업이익 감소, 신용스프레드 확대" 지목
"메가캡의 AI 투자 규모와 기업 부채 수준이 시장의 정점 시사할 수도"
오늘날 기술 투자환경이 1999년의 그림자를 닮아가고 있다는 시장의 우려 속에 인공지능(AI) 열기가 거품인지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몇 구체적인 경고 신호가 존재한다고 9일(현지시간) 고객들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전략가들은 현재의 AI 열풍이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를 닮아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마켓 리서치 팀의 도미닉 윌슨 수석 고문과 비키 창 거시경제 전략가는 보고서에서 "AI 붐이 2000년대 초의 광풍과 유사해질지 모른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1999년 수준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1990년대 쌓였던 불균형은 AI 투자 붐이 이어질수록 점차 더 명확해질 수 있다"며 "최근 몇 달 동안 1990년대 기술 붐의 변곡점을 연상시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의 AI 투자 열풍은 1997년 당시 기술주들의 모습과 비슷하고 닷컴 버블이 터지기 몇 년 전 상황과도 닮았다.
1990년대 기술 장비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지출은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정점은 2000년 비주거용 통신 및 기술 부문 투자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5%에 이르렀을 때다.
투자지출은 닷컴 버블 붕괴 직전 수개월 사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의 전략가들은 "당시 높게 평가된 자산 가격이 실제로 투자 의사 결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올해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애플 같은 메가캡 기술 기업들이 약 3490억달러(약 511조9000억원)의 자본지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투자자들은 AI 인프라 투자 과열을 우려하고 있다.
1997년경 정점을 찍은 기업 이익은 이후 감소하기 시작했다. 윌슨 고문과 창 전략가에 따르면 "수익성은 거품이 꺼지기 한참 전 이미 정점을 찍었다."
당시 기업 이익률은 비교적 견조했다. 하지만 거품 시기 후반부에 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거시 지표상 이익률은 감소세를 보였다.
현재 기업 수익성은 여전히 강한 편이다.
금융정보 제공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미국 뉴욕 주식시장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3분기 순이익률은 13.1%로 최근 5년 평균 12.1%를 웃돌고 있다.
닷컴 버블 붕괴 직전 기업들의 부채 규모는 급격히 늘었다. 기업 부채가 이익 대비 비율로 최고점에 도달한 시점은 2001년, 그러니까 버블이 터질 때다.
골드만삭스의 전략가들은 "투자가 증가하고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기업 부문의 재무 균형(저축과 투자 사이의 차이)은 적자로 전환됐다"고 썼다.
일부 메가캡 기업은 AI 투자에 부채를 활용 중이다. 일례로 메타는 지난달 하순 3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으로 AI 투자 확대안에 자금을 댔다.
골드만삭스는 다만 "현재 대다수 기업이 설비투자를 잉여현금흐름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부채 대비 이익 비율은 닷컴 버블 당시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1990년대 후반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금리인하 사이클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이것이 증시 상승세에 추가 연료를 공급한 요인이다.
골드만삭스의 표현대로 "낮은 금리와 자본 유입이 증시에 불을 붙인 셈"이다.
연준은 10월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다음달 0.25%포인트 추가 인하가 단행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감이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이자 억만장자 투자자 레이 달리오 같은 일부 시장 전문가는 연준의 완화적 정책이 새로운 자산 거품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닷컴 버블 붕괴 직전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신용 스프레드는 회사채 등 위험자산이 국채에 비해 얼마나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투자자들이 위험을 더 크게 인식할수록 그 폭은 넓어진다.
현재 신용 스프레드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사이 점차 확대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윌슨 고문과 창 전략가는 "1990년대 당시 이런 경고 신호들이 실제 닷컴 버블 붕괴 2년 전부터 나타났다"면서 "AI 투자 열풍도 아직은 어느 정도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고 봤다.
이진수 선임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