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장면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분노의 강'으로 몰아넣으면서 미국 정치판에 돌풍을 일으킨 뉴욕시장 당선인 조란 맘다니(34)는 지난 5일(현지시간) 인수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는데 모두 여성으로 꾸려 화제가 되고 있다.

맘다니를 묘사할 때 국내외 언론들은 항상 '무슬림'이라는 단어를 무슨 부적처럼 붙여놓았는데 어쨌든 맘다니는 흔히 생각하듯이 무슬림인 자신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고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특히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던 리나 칸 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인선이 주목을 받았는데, 칸은 FTC에서 빅테크 기업들을 대상으로 독점금지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쳐왔기 때문에 암호화폐의 열렬한 지지자로 변한 뒤 밈코인으로 큰 돈을 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암호화폐에 대한 직접적인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적은 없지만 '혁신'이라는 이름이 불공정행위·시장지배·사기행위의 가림막이 되면 안 된다는 입장을 한결같이 밝혀왔기 때문이다.  

조란 맘다니는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와 미국에서 보냈으며, 뉴욕의 명문 공립학교와 미국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거쳐 성장했다. 그는 브롱크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보우도인 칼리지에서 '아프리카학' 학사 학위를 받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비교적 풍부한 문화적 경제적 혜택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때문에 그를 일각에서는 '캐비어 좌파'나 '금수저'로 부르기는 하지만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맘다니의 자산은 약 15만~25만달러 수준으로, 뉴욕 정치인 중에서는 비교적 소박한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맘다니에게는 저명한 정치학자인 아버지 마흐무드 맘다니와 세계적 영화감독인 어머니 미라 나이르라는 성장 배경 때문에 금수저임에도 과격한 무슬림 좌파라는 낙인이 붙어있기에 이처럼 파격적인 인수위를 꾸린 것으로 보인다. '금수저'라는 말은 그의 좌파적 정책에 불신을 심어주고 '무슬림'이라는 종교는 그에게 여성차별이라는 선입견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 시장 선거 결과를 보도한 현지 신문들. 사진 속 인물은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최근 뉴욕 시장 선거 결과를 보도한 현지 신문들. 사진 속 인물은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장면2

"테이블 밑으로 몰래 검지와 엄지를 쥐어봐. 그러면 왼손은 b가 되고 오른손은 d가 되지. 테이블 왼쪽은 자기가 먹을 bread(빵)이고 오른쪽은 drink(물)야. 그리고 포크는 밖의 것부터 쓰는 것이야."

JD 밴스(41) 부통령 후보의 출세작이자 자서전인 '힐빌리의 노래'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서전은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넷플릭스를 통하면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럴 듯한 로펌에 인턴으로 취직하기 위해 노력하는 밴스는 어쩌다 로펌 고위 관계자들과 식사 자리를 갖지만 테이블 매너도 전혀 모르고 와인 종류도 모른다.

해서 비밀리(?)에 인도계 애인 '우샤'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포크 사용법과 '좌빵우물' 등 테이블 메너를 즉석에서 배운다. 자리의 왼쪽에 빵과 오른쪽의 물이 자기 것이니 헷갈리지 말라는 조언. 미국에서 가난의 상징인 '힐빌리'에서 마약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가 이제 부통령을 넘어 공화당의 차기 대권 후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미국의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이 공화당 차기 대선 후보 선두주자는 JD 밴스 부통령이며, 그를 지지할 뜻이 있다고 사석에서 밝혔다고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가 현지시간 7일 보도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밴스 부통령과 루비오 장관을 가능성 있는 후계자로 지목했고 두 사람이 2028년 대선에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좌빵우물'도 모르던 밴스 부통령이 보수진영의 대변인을 넘어 공화당의 대선 후보까지 오른다면 인도계 무슬림으로 자본주의 심장 뉴욕시장에 오른 맘다니 못지않게 아이러니한 정치상황이 아닐 수 없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 / 사진=연합뉴스
JD 밴스 미국 부통령 / 사진=연합뉴스

◇'진실의 쇠퇴' 시기에는 정책보다 서사와 스토리텔링이 여론을 만든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현상이 미국 정치에 등장한 것은 '진실의 쇠퇴'(truth decay)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지난 2020년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공화당 내부에 부정선거 음모론이 팽배하자 한 인터뷰를 통해 진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사실(facts)과 분석(analysis)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이른바 '진실의 쇠퇴'가 만연하고 있다고 현 미국 사회를 진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검색엔진, '정보끼리의 필터버블(filter bubble)' 및 이용자 맞춤형 알고리즘 등이 등장하면서 대중이 동일한 사실(facts)을 기반으로 논의하기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접하게 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는데 그같은 진단은 지금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만연된 현실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정치의 풍경은 종종 역설로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최근 가장 흥미로운 대비는 뉴욕시장에 당선된 좌파 정치인 조란 맘다니와 현직 부통령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후계자로 차기 공화당의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밴스의 대조적인 성장 배경과 정치 노선이다. 이 둘의 교차점은 단순한 인물 비교를 넘어, 미국 정치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두 인물은 출신 배경과 정치 노선이 정반대다. 맘다니는 엘리트 가정 출신이지만 좌파이고, 밴스는 빈곤층 출신이지만 우파다. 이 역설은 미국 정치의 고질적인 모순을 상징한다.

맘다니의 공약대로 "모든 월세를 동결"하는 것과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의 시민에게 2% 세금을 추가징수하는 '부유세'는 뉴욕시장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뉴욕주 의회 입법이 필요하다. 현재 뉴욕주지사 캐시 호컬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인의 진보적 정책(특히 부유세·세금 인상)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따라서 맘다니의 정책은 뉴욕주 의회와 주지사와의 협력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다만 그는 기득권과의 투쟁을 통해 점차 진보진영의 대변인 자리에 오르는 '스토리텔링'은 완성할 수 있다.  

한편 밴스 부통령은 가난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자기 책임'과 '보수적 가치'를 강조해왔다. 그는 복지 확대보다는 가족 해체, 문화적 타락을 문제 삼는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의 사람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밴스는 자신을 "힐빌리 출신"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예일 로스쿨 졸업 후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활동하며 엘리트 네트워크에 깊이 연결되었다는 의구심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미국 정치가 계급이 아닌 문화 전쟁(culture war)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은 후보의 정책보다 정체성, 태도, 언어, 상징에 반응한다. 그래서 부자 좌파가 빈곤층의 지지를 받고, 빈곤 출신 보수가 중산층 이상의 표를 얻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말한다. 

맘다니와 밴스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강력한 '서사'를 무기로 삼는다. 맘다니는 '이민자 청년의 정의로운 투쟁'을, 밴스는 '가난한 백인의 자수성가'를 내세운다. 이처럼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실효성보다 누가 더 강력한 이야기로 유권자의 감정을 사로잡는가이다. '정책'보다 '서사'가 지배하는 시대는 미국 정치의 가장 큰 모순이자, 가장 큰 진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시장 당선인 / 사진=연합뉴스

◇정치인에게 개인적인 서사가 중요하지만 결국 표심은 '포켓북 투표'에 좌우되는 것도 현실

하지만 개인적 서사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분명하다. 미국 대선은 언제나 거대한 이념의 충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요인은 경제와 물가다. 조 바이든이 승리했을 때도,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했을 때도, 그 이면에는 결국 생활비와 경제 체감 지표가 있었다.

대선 캠페인에서 후보들은 외교, 안보,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의제를 내세운다. 그러나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최종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내 지갑 사정"이다. 바이든의 승리 당시,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과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트럼프의 재집권 역시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급등에 대한 불만이 표심을 움직인 결과였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포켓북 투표'(pocketbook voting)라 부른다. 유권자는 결국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한다. 바이든은 경기부양과 복지 확대로 "경제 회복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트럼프는 "물가 안정과 강력한 리더십"을 내세워 불만을 흡수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지방선거에서 완패하자 지난 7일 저녁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법무부에 불법적인 공모, 가격 조작을 통한 쇠고기 가격을 인상하는 육류 포장 회사에 대한 조사를 즉시 시작하라고 명령했다"고 올렸다.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육류 포장업체 조사는 뉴욕시와 버지니아주 등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이유가 생활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난 후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말하자면 육류 포장업체의 욕심 때문에 자신이 공산주의자 맘다니에게 패배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선거배패 분석이 옳은지 틀린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빌 클린턴 대통령의 1992 대선 슬로건 "It's the economy, stupid"(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는 여전히 가장 강력한 화두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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