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에도 안전장치
"최소 경쟁국가와 비슷한 수준"
중장기 외환시장 부담·국내투자 위축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타결된 한미 정상회담 경제 합의안이 한국 경제에 '일단의 안도감'을 안겼다.
이번 타결로 '연간 200억달러'(약 28조5000억원) 투자 한도 내에서 대미 투자 규모와 외환시장 충격을 동시에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매년 30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조적 부담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과제로 남았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총 3500억달러(약 49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다. 이 중 현금 투자 2000억달러와 조선업 중심의 '마스가 프로젝트' 1500억달러로 구성됐다. 특히 현금 투자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로 제한하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
이는 한국이 협상 초반부터 제시한 '마지노선'을 지켜낸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는 연간 150억~200억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정부는 외환시장 불안이 감지될 경우 투자 납입 시기나 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시켰다.
한국이 이번 협상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부분은 '품목별 관세 조정'이 꼽힌다.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는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가격 경쟁력 유지에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반도체 품목에 대해서도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항이 명문화됐다. 이는 미국의 공급망 정책 하에서 한국이 '우호적 경쟁국'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이번 합의로 무역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다소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낙관론만으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매년 30조원의 달러 매입 수요가 새로 생긴다는 의미라는 예상과 함께 외환시장이 이를 흡수하지 못하면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한 국내 설비투자 감소 가능성도 걱정이다. 기업과 정부의 자금이 대미 투자로 이동하면 국내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GDP 구성 항목 중 '투자' 부문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협상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이 빠진 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이 외환 안정성을 높이는 핵심 안전판으로 기대했던 조치였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다.
여기에다 향후 미국 정치 일정이나 통상정책 기조에 따라 추가 관세나 투자 압박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워 여전히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은 한국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면서 최소한의 방어선을 확보한 협상으로 평가된다.
관세 인하와 투자 한도 설정이라는 성과가 있었지만, 매년 3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자금 유출은 외환시장 안정과 내수 투자 유지라는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위기 회피'에는 성공했지만, '지속 가능한 구조'로 이어가려면 많은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외환시장 관리와 산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전략적 대응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한숨 돌린 지금의 안도감이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