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배당보험 초과수익 90% 배분 약속해놓고 모르쇠
보험 계약자 고령화에 '시간끌기'…"일탈회계 전형"

2025 삼성생명 ESG 보고서 표지 / 사진=삼성생명
2025 삼성생명 ESG 보고서 표지 / 사진=삼성생명

삼성그룹 계열사의 회계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기된 회계부정과 시세조종 혐의는 지난 17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삼성생명 회계 이슈는 다시 한 번 이 회장에게 '부정회계를 통한 경영권 유지'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논란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고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실질적 영향력이 있음에도 투명성 부족과 회계 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여기에 과거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은 문제까지 겹치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논란의 삼성생명' 시리즈를 통해 배경과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삼성생명의 회계 처리와 배당 관행에 대한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회사가 지난 6월 발간한 2025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조차 현실과 정면 충돌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ESG 경영 핵심 가치로 고객 권익 보호, 투명 회계, 이해상충 방지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유배당 계약자 배당 누락, 자산 회계처리 방식 논란 등 실제 행보는 보고서 내용과 크게 어긋난다는 평가다.

삼성생명 2025 ESG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고객과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보험사'를 표방하며 적극적인 정보공개와 고객 권익 보호를 경영의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소비자 보호, 내부통제, 이해상충 이슈에 대한 외부 자문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ESG위원회를 중심으로 이사회가 책임경영을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보고서 내부에는 '지속가능성', '고객 보호', '책임경영'이라는 키워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다른 상황이다. 현재 불거진 회계 논란은 ESG 보고서 내의 서술과 정반대에 가깝다. 삼성생명은 1993년 이전 유배당 보험계약자들의 보험료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을 취득했다. 현재 이 자산들의 가치는 수십조원에 달한다. 반면 그동안 계약자에게 돌아간 배당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이는 계약자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ESG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도덕적 해이로 비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SG 정보의 신뢰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지표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등 국제 평가기관들은 ESG 평가지표에 △소유와 지배 △보수 △회계 △기업윤리의 적정성을 포함시키고 있다. 삼성생명을 둘러싼 회계 논란 등이 회사의 국내외 ESG 평가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유배당 보험은 당시 약관상 초과수익의 90%를 계약자에게 배분하겠다고 명시된 상품"이라며 "그러나 삼성전자 주식 등으로 수십 조원의 자산이 형성됐음에도 배당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회계상으로는 유배당 보험료와 무배당 보험료를 구분하지 않고 자산을 혼합 운용하면서 계약자 이익을 부채 기준으로만 산정해 사실상 배당 비율이 33%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약속된 90% 배분 구조가 무력화된 셈이다.

삼성생명이 계약자의 고령화를 놓고 시간끌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는 "이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이 대부분 60~80대에 이르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자가 줄어든다는 점을 회사가 이용하고 있다"며 "계약자가 사망하면 미지급된 배당 몫은 결국 회사로 귀속되는 구조인데 이는 고객과의 약속을 회사 이익 논리로 덮는 일탈 회계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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