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의회선거에서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블루웨이브'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에 미국 기술주와 국채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대규모 재정부양이 경기반등과 물가상승을 자극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성행하던 '리플레이션 트레이드'가 청산되면서다.
◇'블루웨이브 트레이드' 청산...기술주 뛰고 美국채금리 내리고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선거 다음날인 4일(현지시간) 기술주 랠리에 힘입어 주요 지수가 일제히 올랐다. 간판 지수인 S&P500은 2.20% 뛰었다. 하루치로는 지난 6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3.85% 상승했다. 대형 기술주인 페이스북과 알파벳(구글 모회사)이 각각 8%, 6% 올랐고, 애플은 4% 뛰었다.
투자자들은 주식뿐 아니라 미국 국채에도 달려들었다. 이 여파로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금리가 눈에 띄게 하락했다. 기준물인 10년물 금리는 0.77%로 1.3%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4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투자자들은 당초 블루웨이브발 대규모 재정부양을 기대했다. 이는 뉴욕증시에서 성장주 대비 가치주 우위의 투자 분위기를 조성했다.
성장주는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아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아래 뉴욕증시 랠리를 주도해온 기술주가 대표적이다.
반면 가치주는 기업 가치가 실적이나 자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돼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말한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는 최근 기술주의 부진을 초래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는 한동안 미국 국채 투자 수요도 쪼그라트렸다. 대규모 재정부양이 기반시설 투자로 이어져 국채 발행 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서였다.
파비안나 페델리 로베카 펀더멘털 주식 부문 글로벌 책임자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블루웨이브 트레이드'는 지난여름 이후 지속돼 최근 기반이 더 탄탄해졌지만, 이제부터는 청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 결과라는 단일 요인보다 경기부양과 팬데믹 사태의 향방이 시장에 더 중요한 조종자가 됐다"고 덧붙였다.
FT는 미국이 선거를 치른 전날 저녁만 해도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한때 0.9%선을 넘어 지난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민주당의 대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개표가 본격화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대선은 물론 상원 선거가 대접전 양상을 띠면서다. 프랑스 자산운용사 까미낙의 디디에 생-조지 전략투자위원회 위원은 "시장이 블루웨이브 트레이드 이전으로 복귀하고 있다"며 "펀더멘털로의 복귀"라고 말했다.
짐 리비스 M&G 공공채권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할 가능성이 적다는 건 대규모 추가 재정부양이 이뤄질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경제가 다시 둔화하고 코로나19의 겨울 재확산이 일어나면 통화정책으로 한 번 더 경기를 떠받쳐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블루웨이브가 무산되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추가 통화완화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분점정부, 선거결과 확정 지연...'최악 시나리오'
블룸버그는 백악관과 하원, 상원의 승자가 엇갈리는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과 함께 대선 결과 확정이 수주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는 시장에서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지적했다.
이번 대선을 이미 자신의 승리로 잘못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까지 가는 공세를 벼르고 있다. 그는 접전인 주 가운데 자신이 우세한 곳에서는 개표 중단을, 열세인 곳에서는 재검표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번 선거에는 1억명이 넘는 유권자가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에 일부 주에서 개표가 지연되고 있다.
피터 맥캘럼 미즈호인터내셔널 금리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바이든이나 트럼프, 누가 이끄는 정부이든 분점정부가 될지 여부가 시장에 주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언 셰퍼드슨 판테온마크로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공화당이 계속 상원을 장악하게 되면, 내년 초에 5000억달러가 넘는 재정부양안만 통과돼도 놀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루웨이브를 기대했던 이들은 민주당이 추진해온 2조달러 규모의 재정부양이 내년 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바스티엔 갈리 노르디아인베스트먼트펀드 거시 전략가는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한 상태에서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재정긴축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