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심의 거대한 숲, 센트럴 파크
뉴욕 맨해튼에 가본 사람이면 반드시 ‘센트럴 파크’를 꼭 방문하게 된다. 값비싼 대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큰 공원을 갖춰놓을 수 있을까. 경제적인 비용 문제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 사회의 관념으로는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공원의 규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략 남북 4㎞, 동서 1㎞나 되는 넓고 큰 공원을 자로 잰 듯이 반듯하게 만드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원 조성 단계의 구획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뉴욕시는 1811년에 이미 맨해튼 도시 건설 계획을 세웠다. 가로세로 일정한 크기의 격자망으로 도로를 정비했다. 유럽이나 동양의 구대륙 도시들은 인명을 따서 거리에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뉴욕은 단순하게 숫자로만 거리 이름을 지었다. 5번가 42번 스트리트… 그랬다. 숫자가 전부였다. 모든 도로가 공평했다. 동네의 빈부 여부를 불문하고 그저 2번가 58번 스트리트, 9번가 29번 스트리트 등으로만 불렀다. 그래서 집을 찾기도 쉬웠다. 숫자만 알면 대략 어느 지역쯤인지 짐작할 수 있었고, 찾아가기도 어렵지 않았다.
미국은 유럽의 문화를 동경하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무조건 따르진 않았다. 그리고 놀랍게도(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건물이나 도로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고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려고 했다. 맨해튼 거리에서 200년 전에 미국인들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도시 속의 휴식처, 자연의 환상

바둑판처럼 꾸민 격자망 도시계획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 도시화와 산업화의 문제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가 점점 팽창하면서 서민들의 주거와 교육 문제가 불거졌고, 환경오염 문제도 제기됐다. 어렵게 살아가는 노동자와 서민들이 짬을 내서 교외로 휴가를 떠나기 버겁다는 것도 도시산업화의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도시 안에 시민의 휴식처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대두됐다. 이것이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기본 정신이다.
1857년, 뉴욕시는 공원개발계획을 현상 공모했다. 마감기일에 맞춰 들어온 의견들은 모두 함량미달이었다. 하지만 마감을 하루 넘겨 들어온 제안서는 매우 흥미로웠다. 유럽 귀족풍이면서 환경친화적인 ‘프레드릭 옴스테드’ 안이었는데, ‘자연의 환상’을 기본 콘셉트로 하고 있었다. 자연을 통해 사람의 심성을 정화한다는 것이었다. 뉴욕시는 이 안을 낙점했다.
원래 센트럴파크 부지는 수렁과 진흙밭이었다. 가난한 유대인과 독일, 러시아, 동유럽 출신의 극빈층 이민자가 사는 동네였다. 당시에는 서민들의 발이 되어줄 자동차가 없었다. 여가나 휴가의 개념도 없었다. 그렇다고 도심 주변에 산과 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는 한창 개발 중인 삭막한 도시화 풍경뿐이었다. 서민들에게 휴식의 공간이나 자연 속에서의 신선한 바람은 꿈으로도 꾸기 힘든 환상이었다.
그래서 옴스테드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 잔디밭이나 호수, 언덕에 이르는 자연을 사람의 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아무것도 없던 공터와 버려진 빈민가 주거지에 사람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돌을 고르고, 나무를 심고, 호수를 만들고, 오솔길을 내고, 잔디를 심었다. 그렇게 수십 년 간 노력이 계속 이어졌다. 그 결실이 현재의 모습이다. 150년이 흐른 지금도 옴스테드의 바람과 계획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긴 호흡 속에 발전하는 사회
인공적인 자연지대인 센트럴 파크는 도시와 균형을 이루면서 야생 숲 같은 자연의 풍경을 자랑한다. 갑갑한 도시에서 ‘확 뚫린 개방감’은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질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시민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1800년대의 뉴요커들은 삭막한 공터에 언제 꽃필지 모를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이제 그들의 후손들이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하지만 후손들도 누리기만 하진 않는다. 센트럴 파크 관리위원회란 게 있다. 민간단체다. 공원 운영비 80%가 주변 고급 아파트 주민의 기부에서 나온다. 공원의 혜택에 기부로 답례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자세가 마냥 부러울 뿐이다. 우리에게도 개발 논리와 공공성 인프라의 확장 논리는 존재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장기적인 비전과 노력, 관용적인 행정력은 아직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듯하다. 용산 미군부대를 개발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우려할 만한 부분들이 나타난다. 당초 예정에 없던 건물들이 자연공원지역에 들어서고 있으니 말이다. 긴 호흡은 우리가 한 차원 높은 선진 사회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미국 Nest Seekers Internatioanl 한국지사장 · 뉴욕주 부동산 세일즈퍼슨 / Henry Kwa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