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심사 철회 급증, PIPE 규제 발목
'상폐' 기준 강화…시장 침체 가속화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사진=챗GPT 생성 이미지

국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의 상장폐지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교보13호스팩이 울트라브이와의 합병 계약을 철회한 뒤 청산된 데 이어, 다수의 스팩이 예비심사 단계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지난 14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폐지된 기업 39개 중 스팩이 총 25개로 집계됐다. 문제는 기업과 합병을 통해 상장폐지된 스팩은 9개에 불과한 반면, 나머지 16개는 기업과 합병을 하지 못해 상장폐지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스팩은 비상장기업 인수합병을 목적으로 하는 페이퍼컴퍼니다. 증권사가 신주를 발행해 공모자금을 모아 증권시장에 신규상장한 후 3년 내에 비상장기업(또는 코넥스 상장기업)을 인수합병해야 한다. 만일 상장 후 30개월 이내에 합병을 위한 상장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후 한 달 안에 합병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장폐지 기준이 된다.

지난 7월 11일 상장 폐지된 교보13호스팩은 지난 5월 29일 울트라브이와 체결한 합병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양측은 지난 3월 합병을 위한 이사회를 열고 한국거래소에 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울트라브이가 계약상 명시된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합병이 무산됐다.

울트라브이는 2024년 최소주문금액 이행률이 47%로 전년(72.3%) 대비 크게 하락해 실적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로 인해 거래소 심사 과정에서도 합병 추진의 타당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교보13호스팩 사례는 최근 한국 스팩 시장의 위축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합병을 추진했던 스팩 중 교보13호스팩을 포함해 5개가 합병이 무산됐다.

한화플러스제4호스팩은 바이오앱과 합병을 추진했으나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예비심사 미승인 통보를 받으면서 합병이 무산됐다. 대신밸런스제16호스팩은 루리텍과 합병을 추진했으나, 지난 5월 회사측의 내부 사정으로 합병 계약을 해지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IBKS제20호스팩은 영구크린과 합병을 추진했으나 회사 내부 사정으로 합병 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했고, 신한제10호스팩은 비젼사이언스와 합병을 추진했으나 비전사이언스 측이 상장계획을 자진 철회하면서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스팩 시장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은 스팩 합병 심사에서 기업의 실적 기반, 선행조건 이행 가능성을 보다 엄격히 검토하고 있다. 이는 부실 기업의 상장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지만, 과도한 규제가 스팩 시장의 성장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시화 한화증권 연구원은 "최근 예비심사 단계에서 합병을 자진 철회하는 스팩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는 기업가치 고평가 논란과 금융당국의 상장 심사가 한층 엄격해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PIPE(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의 사모투자)' 규제 또한 스팩 합병에 걸림돌로 작용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스팩이 유망한 비상장기업을 인수하려면 PIPE 형태로 추가 자금을 유치해야 하지만, 현행 규제상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PIPE 거래가 이사회 결의만으로 가능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하고 있어 거래의 시의성과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그간 PIPE 거래를 통한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나 편법적 자금조달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를 유지해왔으나 최근 들어 스팩 상장 이후 정상적인 합병 딜까지 막히면서 역효과가 불거지고 있다.

특히 우량 비상장기업일수록 규모가 큰 스팩 합병을 추진하려면 PIPE 자금 조달이 필수인데, 국내에서는 이같은 유연한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즉 이로 인해 합병이 무산되고, 스팩의 청산이나 상장폐지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는 곧 투자자들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PIPE 규제 완화는 대기업 경영권 승계와 무관한 스팩과 같은 인수금융 등에서 우선 도입돼야 한다"며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구 관행은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팩 시장은 상장폐지 요건 강화로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시화 연구원은 "2026년부터 스팩과 합병한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기준이 단계적으로 높아진다"며 "시가총액 150억원 이하(2026년), 200억원(2027년), 300억원(2028년) 미만 기업은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이 폐지된다. 이를 적용할 경우 2028년에는 20개가 넘는 합병 상장사도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양성모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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