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롯데가의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이 한국 롯데의 지분을 대부분 정리하면서 '형제의 난'이 일단락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주주들과 유통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아직 롯데를 지배하지 못했다. 엄밀하게 말해 일본과 한국을 통틀어 롯데그룹 내에서 형 신동주 회장의 지분이 더 유의미하게 많다. 현재 아우 신동빈 회장이 그룹을 경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주주들이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20일 롯데에 따르면 지난 9월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장남 신동주 SDJ 코퍼레이션 회장이 롯데지주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대상은 우선주 3만4962주로 액수로는 약 16억원 규모였다. 앞서 신동주 회장은 롯데쇼핑과 롯데칠성, 롯데푸드 등의 주식도 모두 팔았다.
현재 신동주 회장은 롯데 비상장사 중 롯데건설(0.38%)과 롯데캐피탈(0.53%) 등 일부 회사에 1% 미만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주 회장이 국내 롯데의 지분을 대부분 정리하고 나서자 업계와 주주들은 아우 신동빈 회장과 형 신동주 회장 사이에서 벌어진 '형제의 난'이 사실상 아우의 승리로 끝난 것 아니냐는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SDJ코퍼레이션 측은 한국 상장사 지분 매각에 대해 "의미없는 주식을 정리하는 차원이며 앞으로도 롯데의 장기적인 경영 정상화에 힘쓸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매각한 지분과 현재 보유 중인 지분 모두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었다.
게다가 지분 매각은 이미 예고된 이벤트였다. 신동주 회장은 지난 2017년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출범에 반대한다며 보유 중인 계열사 주식 대부분을 정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동주 회장이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팔아치워도 '형제의 난'이 끝나지 않는 것은 실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서 신동주 회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굳건해서다.
신동주 회장은 일본 광윤사의 최대주주다. 지분율은 50.2%로 과반이 넘는다. 그리고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지분율은 28.14%다. '신동주→광윤사→롯데홀딩스'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번 지분 매각과 상관없이 굳건하다.
그리고 일본 롯데홀딩스가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 중이다.
특히 호텔롯데의 대주주가 바로 일본 롯데홀딩스라는 점이 키포인트다. 호텔롯데는 다른 한국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 중이다. 대표적으로 롯데지주의 지분을 11.05%, 롯데물산 32.83%, 롯데지알에스 18.77%, 롯데쇼핑 8.86%, 롯데건설 43.07%, 롯데렌탈 37.80% 등 총 19개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들고 있다.
이런 지배력에 비해 신동빈 회장은 상대적으로 초라하다. 롯데지주의 지분을 13.00%(보통주 기준) 가지고 있으며, 호텔롯데에는 고작 2.7%다. 신동빈 회장 단독으로는 형 신동주 회장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신동빈 회장이 롯데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다른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의 아군인 덕분이다. 고인이 된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이 지난 2015년 7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해임된 것은 종업원지주회와 임원지주회, 관계사 등 일본 롯데홀딩스의 다른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의 편에 서서 의결권을 몰아준 결과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 이번 신동주 회장의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 매각은 실제 그룹 지배력과는 상관 없는 이벤트라는 게 롯데 주변의 분석이다.
만약 신동빈 회장이 형 신동주 회장과의 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 화해가 아니라면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바로 호텔롯데의 국내 주식시장 상장이다. 상장 과정에서 신주를 발행해 새로운 주주들을 대거 받아들여 호텔롯데 내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율을 낮추는 방법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원화가치 하락과 국내 주식시장의 약세가 지속되면서 호텔롯데와 같은 '대어'가 시장에 데뷔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시기다. 호텔롯데는 그동안 몇차례 상장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코로나19 등의 악재가 발생하면서 상장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실제로 최근 신동빈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문제로 내년까지 호텔롯데의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가 아버지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등 3세 경영에도 시동을 거는 모습이지만 아직 2세의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며 "롯데그룹이 지배구조 불안 문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질 이슈"라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