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高인플레이션과 '악전고투' 광폭 금리인상 불가피
"잠재성장률 밑돌고, 실업률 오르는 '성장침체'가 최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사진=AF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과 악전고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침체에 빠졌던 경제가 급격히 회복되면서 폭발한 수요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과소평가했던 연준이다. 이미 때를 놓쳤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통화긴축 공세를 거듭 벼르고 있다. 연준은 최근 2018년 이후 첫 금리인상을 단행했는데, 다음에는 금리인상폭을 0.25%포인트에서 0.50%포인트로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연준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급격한 긴축이 경기침체(recession)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례들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성장침체'(growth recession)라는 관측이 힘을 받고 있다.

일반적인 경기침체는 마이너스(-) 성장세가 2분기 이상 지속되는 걸 의미한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꺾이면서 생산, 고용, 소득 등 주요 지표가 함께 나빠지는 게 보통이다. 이에 비해 성장침체는 경제가 성장하지만,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돌며 실업률 상승 같은 경기침체의 특징을 동반하는 식이다. '준경착륙'(semi-hard landing)이라고도 한다.

미국 성장률 추이(전분기대비, 연율 %)/자료=FRED   *음영은 경기침체
미국 성장률 추이(전분기대비, 연율 %)/자료=FRED   *음영은 경기침체

◇연준 최대 희망은 '준경착륙'

블룸버그는 28일 인플레이션과 분투하고 있는 연준의 최대 희망이 점점 '준경착륙'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가 확장세를 유지하되, 성장률이 장기 추세인 1.5~2.0%보다는 낮고 실업률이 오르는 걸 유력한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통신은 준경착륙이 연준의 궁극적인 소망인 완벽한 연착륙(soft landing)과는 동떨어지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누그러뜨리는 데 바람직한 결과로 본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인 크루그먼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서 벗어나면서 경기가 과열된 게 분명한 만큼 연준이 경제를 둔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는 미국의 성장률이 연간 약 1% 수준으로 떨어지고, 실업률은 0.50%포인트 오르는 걸 최선의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다이앤 스원크 그랜트손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금리인상으로 신용을 죄면서 실업률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실업률이 내년 말 4.8%(지난 2월은 3.8%)로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스원크는 다만 미국 경제가 현저하게 둔화해도 침체는 피할 것이라며, 이게 바로 준경착륙이라고 말했다.

피터 후퍼 도이체방크 경제리서치 글로벌헤드도 "연준이 운이 좋다면, 내년에 성장침체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금리인상 공세 예고한 파월 

경기과열을 경고하는 지표는 한둘이 아니다. 당장 팬데믹 회복기에 급팽창한 수요가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세를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급등한 식품, 에너지 가격이 본격 반영되면 물가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게 뻔하다.

이런 가운데 미국 노동시장은 파월 의장의 말대로 "극도로 빠듯한" 상태다. 실업자 1인당 1.7개의 일자리가 열려 있어 기업들은 인력 부족과 임금 상승 압력을 호소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1일 한 행사 강연에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보다 정상적인 수준으로 신속히 인상할 계획이라고 했다. 물가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준금리를 제한영역까지 밀어붙일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년에 경기침체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내년 경제전망을 드러내놓고 낙관하지도 않았다. 연준이 최선의 시나리오로 삼고 있는 게 결국 준경착륙이기 쉬운 이유다.

파월의 매파(강경파) 발언은 연준이 금리인상 속도를 높일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여파로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이 지난 주말 2.29%로 한 주 새 1.94%에서 0.35%포인트 뛰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5월부터 기준금리를 0.50%포인트씩 인상할 공산이 커졌다고 본다. 연준의 0.50%포인트 금리인상은 2000년이 마지막이다.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 추이(%)/자료=FRED
2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 추이(%)/자료=FRED

◇'고물가+저실업' 침체 우려도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과 알렉스 도매시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은 1955년 이후 미국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 통계를 분석한 최신 논문에서 앞으로 2년간 경기침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결론지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분기별 물가상승률이 평균 5%를 넘으면 2년 내 침체 가능성이 60%, 실업률이 4%를 밑돌면 같은 기간 침체 가능성이  70%나 됐다. 지금처럼 고물가와 저실업이 맞물린 경우라면 침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지적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윌리엄 더들리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도 실업률이 0.3%포인트 이상 오를 때마다 미국 경제는 전면적인 침체에 빠졌다며 비관론에 힘을 보탰다.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파랑, 전년대비), 실업률 추이(%)/자료=FRED  *음영은 경기침체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파랑, 전년대비), 실업률 추이(%)/자료=FRED  *음영은 경기침체

블룸버그는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지 여부는 결국 연준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얼마나 낮추길 원하는지, 또 이를 위해 기준금리를 얼마나 인상하려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은 연준이 가장 선호하는 물가지표인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이 지난 1월 현재 5.2%에서 약 3%로 하락하면 연준이 경기침체를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내년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연준이 경기침체까지 감수하기 전에 승리를 선언하고 멈춰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에단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세계 경제 리서치 책임자도 연준이 내년에 물가상승률을 2.6%까지 낮추고 실업률을 완만하게 끌어올리는 성장침체를 꾀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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