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씹기 위해 씹는 게 바로 껌이다. 역사가 길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나무껍질을 우적우적 씹었다. 마야, 아즈텍인들이 씹기엔 '치클'(chicle)이 제격이었다.
치클은 멕시코 등 남미의 사포딜라 나무 껍질에서 채취하는 끈적끈적한 분비물이다. 우윳빛 즙 같은데, 이를 굳히면 씹기 좋은 천연고무가 된다.
19세기 미국 뉴욕으로 들어온 치클은 나중에 껌의 베이스가 된다. 업자들은 여기에 서로 다른 향을 입혀 껌을 상품화했다. 1950년대에는 더 저렴한 합성고무와 플라스틱이 치클을 대신하게 된다.
◇씹는 게 뭐라고...마케팅의 힘
"껌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파는 게 문제다." 세계 최대 껌 브랜드 리글리(Wrigley, 현재는 마스리글리)의 설립자인 윌리엄 리글리 주니어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저 씹는 게 전부인 껌처럼 무의미한 제품도 없다. 껌에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마케팅이 절실했다.
1891년 회사를 차린 리글리는 이듬해 2개의 껌 브랜드를 선보였다. '라터껌'(Lotta Gum)과 '바사르'(Vassar)다. 라터는 아이들과 남성을, 바사르는 여성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미국 뉴욕에 있는 명문 여대 '바사르칼리지'에서 따온 이름이다.
앞서 1886년에는 역시 미국인인 조나단 프림리가 최초로 과일향 껌을 만들어냈는데, 이름이 '키스-미'(Kis-Me)다. 이 껌은 '키스보다 훨씬 좋다'(Far Better Than A Kiss)는 슬로건 아래 팔렸다.
마케팅에 힘입어 껌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890년대 미국에서는 껌 자판기가 흔해졌을 정도다.
◇브리트니 씹던 껌이 1600만원
껌은 반항의 상징이 되면서 훨씬 더 특별한 게 됐다. 껌을 씹는다는 건 어른들을 깔보고,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됐다. 건들거리며 반항하면서도 천하태평한 듯 씹는 껌은 그야말로 '힙한' 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과 은막을 빛낸 할리우드 스타들이 이런 껌의 이미지를 세계 곳곳으로 전파했다. 1950년대 미국 십대들을 다룬 1978년 영화 '그리스'를 찍을 때 등장인물들이 씹은 껌만 10만개에 달했다고 한다.
껌의 인기는 이후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씹다 뱉은 껌이 2004년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1만4000달러(약 1600만원)에 팔렸을 정도다.
◇10년째 매출 감소..."풍선 터졌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껌의 풍선이 터져버리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지난해만 해도 전 세계 껌 매출은 전년대비 20% 줄었다.
이코노미스트는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일 수 있다고 짚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다 데이트도 끊기고, 클럽도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전 세계 껌 매출은 이미 10년 전부터 줄곧 줄고 있다.
껌 매출 감소의 책임을 스마트폰에 돌리는 이들도 있다. 마트에서 껌은 대개 계산대 대기줄에 있어 충동구매하기 쉬운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느라고 껌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쇼핑이 일상화한 것도 계산대 매대의 껌을 찾는 수요를 줄였다고 본다. 껌을 대체할 입가심 제품이 많아졌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 이들도 있다.
◇껌의 뿌리 찾은 밀레니얼세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것도 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건강, 환경 등에 민감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공 감미료가 든 '플라스틱'을 씹는 건 전혀 힙하지 않은 일이 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직접 회사를 차려 친환경적인 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심플리검'(Simply Gum), '트루검'(True Gum), '누드검'(Nuud Gum) 같은 회사들을 지목했다. 껌의 뿌리로 다시 되돌아간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핵심원료는 과거 마야, 아즈텍인들이 씹던 치클이라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만든 자연성분 껌이 실제로 매우 잘 팔리고 있다며, 이들이 소비자들에게 곱씹어 생각할 거리를 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