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런 美재무장관 '글로벌 최저법인세율' 제안...G20 "올해 중반까지 합의 추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5일 연설에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법인세율 인상이 "바닥을 향한 30년 경주"(30-year race to the bottom)를 멈추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향후 8년간 2조2500억달러(약 2540조원)를 투자하는 내용의 '미국 일자리 계획'(American Jobs Plan)을 발표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기반시설을 확충·개선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주요 재원은 기업 증세를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연방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다국적 기업의 해외수익에 물리는 세금은 10.5%에서 최저 21%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기업 증세는 무엇보다 당장 절실한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지만, 국제사회는 옐런 장관의 제안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주요 20개국(G20)은 7일(현지시간)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낸 성명에서 올해 중반까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대한 합의에 도달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G20은 "공정하고 지속가능하며, 현대적인 글로벌 세제를 위한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왜?
국제사회가 최저 법인세율 도입에 공감대를 모은 건 옐런이 말한 '바닥을 향한 30년 경주'의 역효과 때문이다. 선진국은 1980년대 영국이 50%가 넘던 법인세율을 대폭 낮춘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법인세 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으면, 자국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 저하를 이유로 세율이 낮은 나라로 법인을 옮길 수 있다. 이른바 '법인 자리바꿈'(corporate inversion)이다. 법인세율이 높으면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특히 기술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법인세율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다. 소프트웨어와 지식재산권, 로열티 등 무형자산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한 이들은 건물이나 설비 등에 발이 묶여 있지 않아 조세관할지를 넘나들기 쉽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애플,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5대 기술기업이 지난 10년간 낸 법인세가 2200억달러, 세전 총수익의 16%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아일랜드를 비롯해 법인세율이 지극히 낫은 조세피난처를 거점으로 삼은 덕분이었다.
이런 가운데 터진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법인세율 인하 경쟁이 촉발한 세제기반 침식 우려를 증폭시켰다. 경기부양에 필요한 세수 한푼이 아쉬워지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영국도 현행 19%인 대기업 법인세율을 오는 2023년 25%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영국의 법인세 인상은 반 세기 만에 처음이다.
어느 한 나라만 법인세율을 높이면 법인 자리바꿈 등에 따른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국제사회가 함께 법인세율 하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이게 된 이유다.
다만 논란의 여지가 커 국제사회의 합의 가능성을 당장 장담하기는 어렵다.
◇최저 법인세율 도입되면?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도입돼도 각국 정부는 조세주권에 따라 원하는 수준에서 세율을 정할 수 있다. 단 기업은 조세 관할지가 어디든 관계없이 최저 세율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 조세피난처로 법인을 옮기는 데 따른 실익이 사라지는 셈이다.
예를 들어 애플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을 대거 유치한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2.5%인데,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21%라면 아일랜드를 조세 근거지로 삼은 기업은 본국에 8.5%의 법인세를 더 내야 한다.
◇최저 세율 수준은?
로이터는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21%로 제안했지만, 이는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논의해온 12.5%보다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낮은 법인세율로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며 성장해온 아이랜드 같은 나라들의 반발을 살 게 뻔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이유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이 12.5%보다 더 높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이 수준의 최저 세율로 더 걷을 수 있는 세금은 세계적으로 연간 100억달러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OECD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들이 조세피난처로 수익을 옮기며 회피하는 세금이 연간 1000억~2400억달러에 이른다. 최저 법인세율이 도입돼도 그 실효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OECD 회원국 평균 법정 법인세율은 현재 21.5%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