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이달 통화정책회의를 앞두고 고민에 빠진 분위기다. 경기회복 기대감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자아내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에서는 국채 금리(수익률)가 고공행진하면서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 10여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국채 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의 완만한 상승은 건전한 경기낙관론을 반영하지만, 과도한 상승은 경기회복세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맞아 통화부양 공세에 나선 지 이달로 1년을 맞은 중앙은행들의 속내가 복잡한 이유다.
◇미국, 유럽, 영국, 캐나다, 일본...통화정책회의 일정 빼곡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오는 16~1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소집한다. 캐나다 중앙은행(BOC)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보다 앞선 10일, 11일에 각각 통화정책회의를 갖는다. 일본은행(BOJ) 18~19일, 영란은행(BOE) 18일 등 이달 둘째, 셋째주에 걸쳐 통화정책회의가 잇따라 열린다.
블룸버그는 7일 이들 중앙은행이 이번 회의에서 모두 통화부양기조를 재확인할 공산이 크다고 봤다.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통화완화정책을 조기에 거둬들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문제는 중앙은행들이 팬데믹에 맞서 일제히 통화부양 공세에 뛰어든 1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롭 카넬 ING은행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며 "경기회복세가 지속되고 인플레이션 수치가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화완화정책을 어떻게 정당화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美국채금리, 기대인플레 고공행진...경기회복과 과열 사이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초 1%를 밑돌더니 이제 1.6%를 넘어설 태세다. 그 사이 5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연간 2.5%를 돌파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2.5% 넘은 건 2008년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국제유가 급등세가 큰 배경이 됐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5일 미국 공영매체 PBS뉴스아워와 한 회견에서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는 건 강력한 경기 회복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지,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비관론자들은 지난 주말 미국 상원을 통과한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추가 재정부양책이 시행돼 막대한 자금이 풀리면 인플레이션 우려에 국채 금리 상승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고 본다. 경기회복 기대가 경기과열 우려로 바뀌면서 증시에 당장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리 상승은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비용 부담을 키우기도 하다.
◇연준 어디로?...시장선 '오퍼레이션트위스트' 기대
시장에서 이달 가장 주목하는 건 단연 연준의 움직임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부정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연준이 조기 긴축에 나설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지난주 한 콘퍼런스에서 아직 통화긴축에 나설 때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올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그는 연준의 현재 통화정책이 적절하다면서도, 경기전망에 중요한 변화가 있으면 대응수단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연준의 대응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게 오퍼레이션트위스트(OT)다. OT는 연준이 양적완화(자산매입)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국채 가운데 단기물을 매각해 장기물을 되사는 걸 말한다.
단기 국채를 팔아 장기 국채를 사면, 단기금리를 띄어올리고 장기금리는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장단기 금리 차이, 이른바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를 유도할 수 있다. 연준의 보유 자산이 늘어나지도 않는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시장의 이런 관측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장기국채 금리를 낮추기 위한 시도를 할 태세가 아니라는 게 내부 인사들의 전언이라고 전했다.
◇신흥국선 이미 긴축...차입금리 상승 역풍 우려도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인플레이션 압력과 저금리 자금을 푸는 통화완화정책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앙은행이 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해 이달 초 기준금리를 인상한 게 대표적이다. 2018년 이후 첫 금리인상이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오는 17일 금리인상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8월 "가까운 미래에 금리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한 입장이 바뀐 것이다.
신흥시장의 경우 미국 국채 금리 상승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 국채 금리는 사실상 글로벌 차입금리의 기준인데, 신흥시장은 달러를 비롯한 외화 차입 수요가 상대적으로 크다.
톰 올릭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 국채 금리 상승은 대개 경기회복 강도에 대한 확신을 반영한다"면서도 다른 나라에 미칠 역풍을 우려했다. 그는 "나머지 세계에 대한 자금 조달 비용 상승 여파가 너무 일찍 번지고 있다"며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정책 기조를 조정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