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반도체업계, '국가안보 위협' 명분 리쇼어링 지원 요구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적인 자동차용 반도체 품귀 사태에 즉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공급망 재검토 등을 위한 행정명령을 곧 발동할 계획이다.
한편에서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생산 미국 회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발 무역전쟁'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 몇 주 내 '공급망 재검토' 행정명령
1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공급망의 잠재적인 애로사항들을 확인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몇 주 안에 중요 제품의 공급망을 종합 재검토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검토는 우리가 당장 취할 수 있는 행동이 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당장 미국 내에서 문제가 된 제품들의 물리적 생산을 개선하는 데서 동맹국들과의 공동 대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설명이다.
한 백악관 관리는 바이든 행정부가 자동차용 반도체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차회사, 반도체회사, 외교관들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달 말 미국·독일·일본 등 자동차 대국들이 대만 당국에 반도체 증산을 요청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동차용 반도체난에 적극 대응하려는 건 미국 제조업 이끌어온 자동차업체들의 감산, 생산중단 사태가 길어지면 안 그래도 취약한 경기와 고용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더욱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제조업 부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강조해왔다.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는 전날 글로벌 반도체난에 따른 감산이 올해 순이익을 최대 20억달러 갉아먹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사는 미국 캔자스와 캐나다, 멕시코 공장의 생산을 3월 중순까지 중단할 계획이다.
경쟁사인 포드도 이미 픽업트럭 'F-150'의 생산을 줄였다. 픽업트럭은 수익성이 승용차보다 높고, 특히 F-150은 포드의 간판 모델이기 때문에 감산에 따른 실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포드는 반도체난에 따른 올해 순익 감소액이 최대 25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봤다.
GM과 포드는 반도체난에 대응하기 위해 납품업체들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또 모자란 반도체를 가능하면 수익성이 높은 모델에 우선 탑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용 반도체난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PC와 모바일 기기 등 전자기기 사용이 급증한 데서 비롯됐다. 반도체업계가 수익성이 높은 소비가전용 반도체 생산에 집중하는 사이 자동차용 반도체 공급은 빠듯해졌다. 그 사이 미국 정부는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업체 SMIC에 제재를 가하면서 반도체 수급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또 '국가안보' 명분..."리쇼어링 지원해야"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사태에 적극적인 대응 방침을 밝히는 데는 의회의 압력도 크게 작용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상원의원 15명은 지난주 반도체난이 팬데믹 사태 이후 미국의 경기회복을 위협한다며, 백악관에 행동을 촉구했다.
이들은 특히 '칩스'(CHIPS)법을 통해 국내 반도체 생산을 북돋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칩스법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 기반을 마련할 경우 많은 혜택을 주도록 했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리쇼어링(국내복귀)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졌다. 국가안보를 위해 미국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거점을 국내로 되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안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등을 상대로 무역전쟁에 나설 때 쓴 명분이다. 미국은 반도체 조달을 아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한 견제가 심해질 수 있다.
인텔과 퀄컴 등 미국 반도체 대기업 수장들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반시설 투자계획에 국내 반도체 생산을 지원하는 내용을 추가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30년간 전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기울었다며, 더 많은 지원이 없다면 미국의 기술 리더십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