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공적연금 GPIF 제치고 日증시 최대 큰손 등극
증시 랠리에 격차 더 벌어질 듯...시장왜곡·출구지연 우려
일본은행(BOJ)이 세계 최대 공적연금인 일본 연금적립금관리운용(GPIF)을 제치고 사상 처음 일본 증시 최대 '큰손'으로 부상했다.
BOJ가 경기회복을 위해 양적완화(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확대하며 상장지수펀드(ETF)를 대거 매입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에서 BOJ와 GPIF가 너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돼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더불어 BOJ가 워낙 많은 자산을 떠안고 있어 완화 쪽에 치우친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전략에 나서기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日증시 가장 큰 '고래'는 BOJ
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데 신고 닛세이기초연구소 수석 주식 전략가는 일본은행이 보유한 주식 포트폴리오가 11월 말 현재 45조1000억엔(약 428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이로써 BOJ는 사상 처음으로 GPIF(11월 말 44조8000억원 추정)를 제치고 일본 증시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BOJ는 2010년 ETF 매입에 처음 나섰다.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취임한 2013년부터 매수세에 더 힘을 실었다.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정책 목표인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한 2차원 완화의 일환이었다. 2차원 완화는 매입 자산 규모와 대상을 동시에 늘리는 양적, 질적 양적완화를 말한다.
BOJ는 올 들어 증시 부양에 더 힘을 쏟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폭락한 증시를 떠받쳐야 했다. 폭락장이 한창이던 지난 3월 올해 연간 목표치의 2배에 이르는 12조엔 규모의 ETF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한동안 늘어났던 ETF 매입 규모가 다시 줄기는 했지만, 지금 추세만 이어져도 BOJ와 GPIF의 주식 보유액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게 이데 전략가의 전망이다. 일본 증시가 글로벌 증시를 따라 강력한 랠리를 펼치고 있어서다.
도쿄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지난달 1994년 이후 월간 기준 최대인 15% 상승했고, 토픽스지수는 11% 올랐다. 덕분에 11월 고점 때 BOJ가 보유한 주식의 평가이익이 10조엔을 넘기도 했다.
이토 다카시 노무라증권 증시 전략가는 "BOJ는 보유 주식으로 수익을 챙겨본 적이 없고 ETF로 계속 보유하고 있을 뿐"이지만, GPIF는 투자 포트폴리오 내에서 비중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을 때 주식을 기계적으로 팔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기대감에 고공행진하고 있는 글로벌 증시를 따라 일본 증시가 계속 랠리를 펼치면 BOJ가 평가이익 면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GPIF는 원래 일본 국채 중심의 보수적인 투자전략을 고수했다. 수익 전망이 너무 낮다는 판단 아래 2014년 18%였던 일본 주식 보유 상한을 철폐하고 25%를 목표치로 정했다.
◇시장왜곡, 출구찾기 지연 우려
BOJ가 GPIF를 압도하는 일본 증시의 강자로 부상한 게 시장에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중앙은행인 BOJ가 주식 보유액을 과도하게 늘리면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찾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본다.
오쿠모토 사토시 후코쿠생명투자고문 사장은 BOJ와 GPIF 가운데 누가 증시에서 더 큰 '고래'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다만 그는 "국영기관인 BOJ와 일본 대표 공적연금인 GPIF가 현지 주식을 사들이는 건 왜곡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쿠모토 사장은 또 GPIF는 그나마 연금운용을 위해 주식 운용에 대한 책임관리 근거가 있지만 BOJ는 자산으로 주식을 모아두고 있을 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시 히데유키 다이와증권 투자정보 담당 수석 전략가는 평가이익 확대가 정책 목적이 아닌 이상 BOJ가 주식을 대거 매입하는 건 시장에 통제불능의 폐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BOJ가 ETF 매입 규모를 연간 6조엔으로 2배 늘린 2016년 이후에는 경영이 잘 안 돼도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일본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오르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자본생산성(수익성)이 저조해졌다는 얘기다.
노무라의 이토 전략가는 BOJ가 위기 대응을 위해 ETF를 살 때 적용할 규칙은 정했지만, 출구 규칙은 정하지 않았다며 주식 보유분을 매각하지 않고 잔액을 쌓아올리면 언제가는 GPIF처럼 기계적으로 팔아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렇게 되면 시장에 충격이 불가피하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구로다 총재는 BOJ의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을 위한 통화부양책으로 ETF를 계속 매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이데 전략가는 BOJ에 "주가가 지금처럼 급등할 때는 주식을 계속 매입할지 여부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