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비트코인이 모처럼 급등세를 띠자 낙관론에 불이 붙었다.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3년 만에 처음 1만8800달러(약 2100만원)를 돌파했다. 내년 말 적게는 2만5000달러, 많게는 30만달러 넘게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21일 비트코인의 부활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다시 불러 일으키고 있다며, 비트코인 강세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다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고, 암호화폐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월가의 터줏대감들도 속속 호의적으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급등 '2만달러' 코앞
비트코인은 2017년 최고의 랠리를 뽐냈다. 암호화폐 정보업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그해 연말 역대 최고인 1만9665.39달러까지 올랐다. 1년간 1400% 가까이 뛴 것이다. 비트코인은 이듬해 70% 급락하며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최근 다시 가파른 상승세로 주목받고 있다.
급기야 지난 20일에는 2017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1만8800달러를 넘어섰다. 국내 시세도 2018년 1월 이후 처음 2000만원대로 올라섰다. 최근 한 달 새 50%, 올 초에 비하면 2배 넘게 상승했다. 전 세계 시가총액은 이미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금융위기나 팬데믹이나
한동안 잊혀졌던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의 영향이 컸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한 기존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에서 탄생했다. 팬데믹 사태가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중앙은행들이 쏟아낸 막대한 유동성에 따른 화폐가치 하락 우려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고정자산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비트코인이 금 수요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으로 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금은 화폐 가치 하락, 즉 인플레이션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리더 CIO는 지난 20일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의 '스쿼크박스' 프로그램을 통해 암호화폐와 그 기술이 실재하고, 밀레니얼 세대들이 이를 수용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관도 가세...'투기'서 '투자'로?
블랙록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잇따라 개인 중심이던 암호화폐시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투자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는 올 여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첫 비트코인 투자 펀드를 열겠다고 밝혔다. 미국 월가의 간판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인 JP모건은 100여명 규모로 '오닉스'라는 이름의 암호화폐 사업부를 꾸렸다. 이 은행은 지난달에 처음으로 자체 암호화폐인 'JPM코인'을 한 기술업체와의 거래에 사용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씨티그룹 등도 암호화폐시장에 대한 공세를 벼르고 있다.
JP모건의 최근 행보는 암호화폐에 대한 월가의 시각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제이미 다이먼은 2017년 "비트코인은 사기"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을 정도다.
JP모건의 글로벌마켓전략 부문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비트코인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금의 대체 투자처가 될 것이라며, 요즘 추세가 이어지면 비트코인 가격이 2~3배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폴 튜더 존스, 스탠리 드러켄밀러 등 월가에서 손에 꼽는 헤지펀드 전설들도 최근 잇따라 비트코인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으로 투자를 부추겼다. 존스는 "비트코인을 전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됐다"며 "비트코인은 아직 1이닝에 있을 뿐, 갈길이 멀다"고 했다.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처로 계속 몸값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페이팔·FOMO·중앙은행 효과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회사 페이팔이 암호화폐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등의 촉매로 작용했다.
페이팔은 지난달 미국 내 모든 이용자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비롯한 주요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보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뒤 최근 해당 서비스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한 달 전 암호화폐 서비스에 나서겠다는 페이팔의 발표만으로 급등해 2019년 이후 처음으로 1만3000달러를 돌파했다.
월가의 유명 트레이더 출신인 마이크 노보그라츠 갤럭시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 설립자는 당시 페이팔의 발표를 두고 트위터에 "올해 암호화폐시장 최대 뉴스"라며 "우리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는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효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소외되지 않으려는 이들이 덩달아 몰리면서 가격이 더 뛰게 됐다는 얘기다.
주요국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패권을 놓고 벌이고 있는 경쟁도 암호화폐시장 전반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에 더 올라"...32만달러 전망도
긍정적인 분위기는 비트코인 가격 전망치를 띄어 올리고 있다.
비트코인 강세 전망으로 유명한 펀드스트랫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데이비드 그라이더 전략가는 최근 내년 말 비트코인 가격 목표치를 1만6500달러에서 2만5000달러로 높여 잡았다. 지난 20일 종가에서 40% 더 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2017년 말 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에 육박했을 때 같은 분석 모델을 통해 "믿기 어려울 정도의 거품"을 경고한 바 있다. 그라이더는 이번에도 자신의 전망이 들어맞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그는 투자자가 더 많아지고 시장도 커졌다며, 특히 기관투자가들의 합류로 암호화폐시장에 들어오는 자본의 배경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3년 전에는 개인의 투기 수요가 시장을 주도했지만, 이젠 기관이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는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노보그라츠는 강세론자답게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 말 5만5000~6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그 역시 비트코인이 점점 더 많은 금 수요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다.
톰 피츠패트릭 씨티그룹 전략가는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 말에 최고 31만8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봤다. 주요 기관의 전망치로는 가장 높은 수준이다.
◇2018년 '충격' 잊었나...'과열' 경고도
문제는 암호화폐시장의 변동성이 워낙 크다는 점이다. 2018년처럼 강세 전망이 물거품되기 일쑤였다.
펀드스트랫 공동 창업자인 톰 리는 2018년부터 비트코인의 연말 가격 목표치를 2만5000달러로 정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비트코인 가격이 3000~4000달러로 추락하자 목표달성 시점을 지웠다. 2만5000달러라는 목표는 여전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언제 이 수준에 이를지는 두고 볼 일이다.
노보그라츠 역시 비트코인 가격이 내년 말까지 최대 3배 넘게 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지만, 이미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그는 2017년 11월 비트코인이 이듬해 4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는데, 2018년 마감가는 3000달러선이었다.
에드워드 모야 오안다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는 2014년 참석했던 한 암호화폐 콘퍼런스 분위기를 소개했다. 당시 2개월 동안 치솟은 비트코인 가격은 600달러선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콘퍼런스에 참석한 이들의 관심은 온통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나 더 오를지에 쏠려 있었다고 한다.
모야는 당시 암호화폐시장 분위기가 초창기 외환시장 같았다며 암호화폐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의 비트코인 랠리는 일시적인 모멘텀에 대한 광적인 열광(momentum mania)에 따른 것이라며 지속성을 의심했다. 그는 "기관 트레이더들이 비트코인을 한 방향(가격 상승)으로만 가게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