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시 주도주가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바뀌느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가치투자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치주는 실적이나 자산과 비교해 주가가 저평가된 주식을 말한다. 금융, 항공, 에너지 등 경기순환에 민감한 업종에 쏠린 가치주는 지난 10년 내내 기술주로 대표되는 성장주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지난주 코로나19 백신 기대감에 급등세를 연출했다.
그러나 한켠에선 가치주의 판단 기준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공장, 사무실, 기계가 주축이 되던 산업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아이디어, 브랜드, 노하우가 더 중요해진 디지털시대로 접어든 현재 보유자산, 현금흐름, 실적을 토대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냐는 물음이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은 기업의 내재가치가 더는 예전의 방식으로 포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4일자 최신호에서 달라진 경제환경에 맞게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업그레이드할 때가 온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물간 가치투자?
가치투자는 지난 한 세기 시장을 지배한 투자철학이다. 뿌리는 1930~40년대 벤저민 그레이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치투자의 아버지' 그레이엄은 떠들썩한 선전이나 일시적 감정에 휘둘리던 당시 투자자들에게 기업 재무제표를 토대로 적정주가를 식별하는 과학적 분석을 제안했다. 주가에 낀 '공포와 탐욕'을 걷어내고 실재하는 기업가치를 보라는 제안이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가치주를 가늠하는 대표 지표가 됐다.
이후 가치투자가 수십년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레이엄의 제자 워런 버핏의 공이 컸다.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버핏은 그레이엄의 생각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킨 투자철학으로 세계 최고 부호 반열에 오르면서 가치투자를 대중화했다. 1964년 논란 속에서도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주식을 과감히 매입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닷컴버블이 한창일 때 기술회사들을 멀리했던 것은 가치투자자 버핏의 전설적인 일화로 전해진다.
문제는 가치투자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가치투자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시가총액 기준 3000대 미국 상장기업이 포함된 러셀3000지수에 따르면 10년 전 1달러를 가치주에 투자했다면 현재 2.5달러로 불어났을 것이다. 250%의 수익률이다. 그러나 이는 증시 전체 수익률인 345%나 가치주를 배제했을 때 수익률인 465%에 한참 못 미친다. 대부분의 가치투자 포트폴리오가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해 기술의 부상을 놓친 탓이다.
물론 가치투자자들은 지금까지 가치주가 외면받은 건 증시에 낀 버블 때문이고 결국엔 자신들의 투자철학이 옳았음이 증명될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가치주가 마지막으로 지금만큼 괄시받았던 게 1998~2000년이고 이후 닷컴버블이 터진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증시는 실제로 무척 고평가된 것처럼 보인다.
◇가치평가 방식 바뀌어야
그러나 그동안 경제는 두 가지 커다란 변화를 겪었으며 기존의 기업가치 평가방식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변화 중 하나는 무형자산의 성장이다. 그레이엄 시대 경제의 중추는 유형자산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업을 독보적 지위에 올려놓는 것은 무형자산이다. 애플의 기술력이나 디자인,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 운영체제, 스타벅스의 브랜드 파워 등이 대표적이다. 회사의 노동력, 기업 문화, 출판 저작권도 전부 무형자산에 들어간다. 때문에 사업 가치가 무형자산으로 점점 기울어지는 시대에서 실적이나 장부가액을 바탕으로 기업의 내재가치를 판단한다면 그 지표에 대한 신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이다.
또 다른 변화는 '외부효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부효과란 기업의 행위가 다른 경제주체에 의도치 않은 비용이나 편익을 초래하고도 그에 대한 대가나 보상은 치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일례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부정적 외부효과에 해당한다. 오늘날 가치투자는 저평가된 자동차제조사나 석유생산업체를 더 담으라고 제안하지만, 이들 회사는 앞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하고 탄소세 부과가 확산할 때 큰 비용을 치를 위험이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변하면 가치평가에 대한 투자자들의 사고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치투자가 안전해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의 가치평가 방식으로 투자종목을 고르는 건 미래의 수익이 기대되는 종목이 아니라 호시절을 끝낸 종목일 공산이 크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