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손해보험협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회원사 의결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단독 후보로 추천돼 사실상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셈이다.
한국증권금융 사장 임기 중에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맡고 공백없이 손보협회장까지 하게 됐으니 대단한 행보다. 증권금융 사장과 거래소 이사장, 손보협회장 등 누구라도 마다하기 쉽지 않은 자리에 잇달아 앉았다는 점에서다.
정지원 이사장이 손보협회장으로 가게 됐다는 소식에 상당히 놀라고 의아했다. 보통은 하나도 쉽지 않은 곳의 수장을 세 군데서나 하게 됐다는 점도 있지만 거래소 이사장으로서 보여 준 그의 모습과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협회장이 어울릴까란 생각이 들어서다.
정지원 거래소 이사장이 재임 기간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특정 사안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의 생각이 대체로 비슷하다.
대신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떤 발표를 하고 발언을 할지에 대한 예측이 수월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한마디로 "금융당국이 제시한 정책과 과제를 차질없이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금융당국이 이미 발표한 것이라 공식 행사 전에 기사나 자료를 훑어보면 사실상 정답을 알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거래소 이사장이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만큼 나무랄 이유는 없다.
어쩌면 개인의 공적을 위해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대신 금융당국과 보조를 맞춰가면서 안정적인 시장 관리란 거래소의 본연의 업무에 집중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협회장이라면 '최악'이란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회원사인 금융회사들이 협회장에게 바라는 것은 정책과 방침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이익의 최대화, 피해의 최소화를 위한 정책 결정 유도 내지 지연이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만 봐도 회원사들이 어떤 회장을 원하는지는 뚜렷하다. 금투협은 불과 5년 전만 해도 회원사들에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었다. 수장들이 회원사의 이익을 당국에 전달하기는커녕 반대로 당국의 뜻을 회원사에 관철하는 데 앞장선다는 게 주요 이유다. 그러나 2015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정반대로 변했다.
이후의 수장들이 당국에 금융투자업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정치권의 업권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뛰었고 때로는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고도 공개적으로 주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과 정반대의 성과를 낼 가능성은 있다. 일각의 해석처럼 이번 인사가 모피아의 작품이라면 말이다.
정지원 이사장은 행정고시 27회로 재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 상임위원 등을 거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