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기업공개(IPO) 당시의 포레스트 리 최고경영자(CEO)[사진=씨 웹사이트]
2017년 10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 기업공개(IPO) 당시의 포레스트 리 최고경영자(CEO)[사진=씨 웹사이트]

"차세대 인터넷 공룡이냐, 터질 수밖에 없는 글로벌 기술주 거품의 '증거물 제1호'냐."

미국 월가에서 싱가포르 기업 '씨'(Sea)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라고 한다. 뉴욕증시 투자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낯선 이름의 회사지만, 올해 세계 대형주 가운데 가장 가파른 주가 상승세를 뽐내고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5일(현지시간) 씨가 테슬라나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심지어 로빈후드(미국 개미투자자)들의 표적이 된 이스트만코닥보다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세계에서 성적이 가장 좋은 대형주로 조용히 등극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씨의 운명을 둘러싼 논란에서 현재는 낙관론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이 회사가 지금은 손실을 내고 있지만, 언젠가 동남아시아의 텐센트이자, 알리바바 같은 회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세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2017년 10월 뉴욕증시 데뷔 당시 10억달러에 불과했던 씨의 시가총액은 최근 약 664억달러로 불어났다. 특히 지난 1년 반 동안만 주가가 880% 넘게 뛰었다. 블룸버그는 전 세계에서 비슷한 시총으로 증시에 뛰어든 회사들 가운데 최대 상승폭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6월 역대 최악이었던 공매도 공세도 유례없는 속도로 풀리고 있다고 한다. 씨에 대한 비관론이 낙관론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얘기다.

씨는 올해만 주가가 3.5배가량 올라 인도네시아 최대 은행인 센트럴아시아뱅크와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그룹을 제치고 동남아 시총 1위 기업이 됐다. 지난해에는 아시아 증시 최고 상승세를 기록했다.

◇게임·전자상거래·디지털금융...'동남아판 텐센트+알리바바'

씨가 '동남아판 텐센트+알리바바'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사업구조가 두 회사를 합쳐 놓은 듯하기 때문이다. 사업영역이 게임(가레나), 전자상거래(쇼피), 디지털금융서비스(씨머니) 등을 아우른다.

씨가 자체 제작한 배틀로열 모바일 게임 '프리파이어'(Free Fire)의 성공이 주가를 처음 부양하는 기폭제가 됐다. 이 게임은 현재 130여개국에서 하루 8000만명이 즐기고 있다.

무게중심은 이제 전자상거래와 금융서비스로 옮겨지고 있다. 씨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쇼피는 지난해 4분기에 '동남아의 아마존'으로 불린 알리바바 산하 라자다를 제치고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이 됐다. 씨의 전제 매출에서 전자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3%에서 지난해 40% 이상으로 불어났다.

포레스트 리 씨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금융서비스 부문인 씨머니도 쇼피에 버금가는 규모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씨머니는 모바일 기반 전자지불시스템인 전자지갑에서 소액대출에 이르는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씨 주가 추이(달러)[자료=씨 웹사이트]
씨 주가 추이(달러)[자료=씨 웹사이트]

◇팬데믹에 수요 폭증...CEO는 '월화수목금금금'

리 CEO는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모바일 게임과 전자상거래 등의 수요가 폭증하는 통에 주가가 얼마나 뛰고 있는지 신경쓰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최근 눈코 뜰 새 없다고 했다. 지난 4월부터 일주일 내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에 대한 질문에는 "성공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며 "환경이 좋든 나쁘든, 회사나 사람을 바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리 CEO는 이미 이룬 성공보다 미래의 성공을 더 중요시하는 듯하다. 그는 금융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싱가포르 당국에 디지털뱅킹 라이선스를 신청했고, 게임·물류·전자상거래 분야의 인수 대상을 물색하고 있다.

올해 42세인 리는 중국 톈진 출신이다. 명문 상하이교통대를 나와 모토로라, 코닝 등 다국적 기업 지사에서 근무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은 뒤인 2009년 지금의 회사가 된 '가레나'를 설립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글로벌 억만장자 순위 1135위에 오른 리의 순자산은 약 78억달러에 이른다. 

◇텐센트가 지분 20% 보유...유력 펀드들도 지지

리가 회사의 기초를 세우고 2017년 뉴욕증시에 진출하는 데는 텐센트의 지지가 주효했다. 텐센트는 지금도 씨의 지분 20%를 갖고 있다. 

씨의 든든한 지지자들 가운데는 유력 글로벌 펀드 매니저들도 여럿 있다.

노아 블랙스타인 다이내믹펀드 부사장 겸 선임 포트폴리오매니저가 대표적이다. 그가 운용하는 '다이내믹파워글로벌그로스클래스' 펀드는 씨의 비중을 가장 높은 비중으로 담고 있다(5월 현재). 이 펀드는 지난 10년간 글로벌 주식 뮤추얼펀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자랑한다.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 코라매니지먼트 같은 헤지펀드들도 씨에 적잖은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대니얼 제이콥스 코라매니지먼트 설립 파트너는 지난 2년간 씨를 지켜 봤는데, 훌륭한 팀과 제품이 마치 '미니 텐센트' 같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사진=씨 웹사이트]
[사진=씨 웹사이트]

◇지난해 15억달러 손실..."팬데믹 이후 매출 꺼질라"

문제는 씨가 덩치(시총)에 비해 매출 규모가 아직 적은 데다 손실마저 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매출은 22억달러로 1년 새 163% 늘었지만, DBS(110억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해 손실은 14억6000만달러에 달했다. 

제이콥스는 씨의 손실은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비관론자들의 생각은 바르다.

이들은 씨가 주요 사업에서 자금력이 좋은 경쟁자들과 맞서는 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알리바바를 등에 업은 라자드는 물론 일본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상당한 자금을 유치한 그랩 등이 만만치 않은 상대로 꼽힌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은 싱가포르 최대 통신사 싱텔과 손잡고 디지털뱅킹 부문에 진출할 태세다.

씨가 '프리파이어'를 잇는 모바일 게임 히트작을 아직 못 내고 있는 것도 약점이라고 비관론자들은 지적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끌어올린 씨의 매출이 위기가 잦아들면서 다시 쪼그라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급기야 DBS은행은 지난달 씨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도'로 강등하며, 기술주 거품 상황에서 씨의 주가도 고평가돼 있다고 평가했다.

◇리 CEO "텐센트·알리바바 '미니버전' 아닌 '우리 자신'"

씨를 놓고 낙관론과 비관론이 한창인 건 이 회사에 대한 기대치가 전보다 높아졌다는 방증이다. 씨의 주가가 지난 7거래일 동안 무려 28% 뛴 것도 그렇다.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쏟아졌다.

리 CEO도 회사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졌음을 잘 알고 있는 눈치다. 그는 특히 씨가 '동남아의 텐센트+알리바바'로 불리는 데 대해 "두 개척자들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다만 이런 평가를 달가워하는 것 같지 않은 그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그들의 '미니 버전'이 될 필요는 없다"며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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