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채권단 채무조정 합의...신흥시장 팬데믹 충격 방증
아르헨티나 정부가 4일(현지시간) 주요 민간 채권단과 채무조정에 합의했다. 구체적인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아르헨티나가 이번 합의로 상당한 채무를 감면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건 채권단이 아르헨티나가 정한 이날 시한에 앞서 정부안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마르틴 구스만 아르헨티나 경제장관은 이번 협상을 앞두고 정부안을 개선할 생각이 없으며, 채권단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재융자를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르헨티나는 IMF에 이미 440억달러를 빚지고 있다. IMF는 이 나라의 부채가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10% 가까이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 '큰손'들이 포함된 채권단은 그동안 협상 시한을 거듭 연장하며 아르헨티나와 줄다리기를 벌여왔다. 채권단이 이날 시한을 앞두고 채무조정안을 수용한 건 상황이 그만큼 녹록지 않다는 걸 방증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르헨티나의 채무조정 합의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신흥시장에 준 충격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들이 신흥시장에서 앞으로 더 많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와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팬데믹 공포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3월 말 18개 신흥국이 발행한 달러 표시 국채가 미국 국채보다 수익률(금리)이 10%포인트 넘게 높았다. 시장에서는 이를 디폴트의 전조로 본다. 연초만 해도 같은 상황에 놓인 신흥국은 4개국에 불과했다.
에드워드 글로솝 캐피털이코노믹스 신흥시장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아르헨티나도 지난 5월 이자 5억달러를 제때 못 내 역대 9번째 디폴트를 기록했다.
딜로직에 따르면 신흥국 정부가 지난해 달러 표시 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자금은 1226억달러로 2009년 633억달러에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신흥국 달러 표시 국채만 240억달러에 이른다.
신흥시장에서도 아르헨티나처럼 원자재 수출, 관광 수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아 취약한 상태다. WSJ는 중국 경제의 회복세와 달러 약세가 최근 신흥시장을 떠받쳤지만, 아르헨티나의 채무조정 소식이 신흥시장의 취약성을 새삼 드러내 이날 많은 신흥국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소폭 하락했지만, 칠레 페소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각각 1% 넘게 떨어졌다. 멕시코 페소도 약세가 돋보였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향방이 신흥시장 투자 성적에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 달러는 지난달 4%가량 추락하며, 월간 기준으로 10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달러 약세는 신흥시장의 달러빚 상환 부담을 낮추고, 달러로 매기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 요인이 된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 원자재시장의 회복을 제한하면 신흥시장 전망이 훨씬 더 암울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안 그래도 최근 주요국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급격히 번지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신흥시장에 미친 충격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시들해지고 있다.
신흥시장에서도 기술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나라들은 원자재나 관광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팬데믹 사태로 사람들의 활동이 제한되면서 각광받고 있는 기술 부문이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세프 압바시 INTL FC스톤 글로벌 시장전략가는 신흥국 투자와 관련해 "'그 나라가 발전한 기술 부문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