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한 친환경차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유럽. 지난 3분기 EU의 대체연료차(BEV, PHEV, HEV, FCEV, LPG, CNG) 판매는 21만1635대로 전년 동기 대비 51.4%나 증가했다. 아직 전체 승용차 판매의 6.2%에 불과하지만, 성장속도는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각국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환경규제도 강화추세에 있어 완성차 회사의 친환경차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실제로 유럽 시장을 이끄는 완성차 회사들은 단순히 친환경차 차종 추가를 넘어 전차종 전동화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 자동차 시장 정책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에 발맞춰 개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예를 들면 메르세데스벤츠의 모회사인 다임러의 경우 2022년까지 전모델에 전동화 옵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10종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고 7종은 독자 전기차 브랜드인 'EQ'시리즈로 출시할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2025년까지 80종의 순수 전기차(BEV)를 내놓고 2030년까지 전차종 전동화 옵션을 선보일 방침이다. BMW는 2025년까지 25종의 전기차를 내놓고 대량생산체제를 갖춘다는 전략이다. 볼보, 재규어랜드로버도 전차종 전동화 라인업 구축을 발표했다. 최근 PSA그룹 역시 오펠의 모든 승용차 라인업을 2024년까지 전동화하기로 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도 전동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토요타는 이미 하이브리드를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마쯔다는 2030년 초반까지 모든 차종을 전동화 모델로 전환할 방침이다. 혼다도 2030년까지 판매량의 3분의 2를 친환경차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들 자동차 회사들이 말하는 전동화는 순수 전기차, 하이브리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수소전기차 등 전기 구동력을 활용한 모든 차량을 의미한다. 즉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소극적 행보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친환경차 전략을 강화하며 개발에 속도를 내는 반면 우리나라는 내연기관 차 관련 규제, 친환경차 육성 지원 모두 미흡하다. 심지어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전기차 지원 계획을 3만대에서 2만대로 감축한 것으로 전해진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완성차 회사 입장에서는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국산 친환경차 개발을 선도하는 현대·기아차조차 최근 추세인 전차종 전동화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 현대·기아차의 친환경차 전략은 2020년까지 28종 이상의 친환경차를 출시하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다른 완성차 회사는 별다른 출시 전략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단 1종의 전기차만 생산·판매하고 있고 업계 3위인 한국지엠은 GM으로부터 친환경차를 수입·판매하고 있다. 쌍용차는 청사진조차 없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입지 약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다행히 일각에서는 친환경차 확산을 위한 규제, 정부 지원 확대 등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은 2030년부터 친환경차만 신규등록할 수 있도록 하는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도 2030년까지 탄소배출 실현을 위해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국내 완성차의 개발 전략은 내수 시장에 맞춰져 있어 전차종 전동화와 같은 전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친환경차 지원이 확대되면 완성차들도 그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는 내연기관 종식 선언도 많고 전기차 출시도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는 미비한 것이 사실"이라며 "선진국은 물론 중국에도 뒤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친환경차 육성에 나서지 않는다면 자동차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전기차의 경우 우리나라는 인큐베이터 모델 수준으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