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재등판 요청에 고심을 거듭해 왔다. 관료로서 일을 할 만큼 다 했다고 생각한 데다 여당인 민주당 내에서도 부적격 의견이 비등했던 탓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에 나섰지만 김 전 위원장은 내심 고사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경제적 사정 때문에 공직을 맡는 것보다 민간에 있는 것을 더 선호한 현실적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와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와 금융노조까지 반대 의견을 내자 김 전 위원장은 미련 없이 손을 털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그럼 누가 적당하겠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아끼는 후배인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을 추천했다.

SD(김 전 위원장의 별칭)의 추천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청와대는 최 행장을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간택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강릉고와 고려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5회로 공직을 시작한 최 후보자는 인품 갑(甲)으로 통하는 호인(好人)이다.

기획재정부 근무 시절 후배들은 그를 '가장 닮고 싶은 상사'로 꼽았고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다. 수출입은행장으로 임명돼 서울보증 대표이사에서 물러나게 되자 퇴임식 때 많은 직원들이 눈물을 보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최 후보자도 금융위원장 자리를 선뜻 수락한 것은 아니다. 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조직이 어수선한 상태에서 떠나는 데 대해 부담을 느꼈다는 전언이다.

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몹시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최대 난제는 역시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대출이 금융시장 불안의 뇌관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최근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들을 좀 살펴보자. 거시경제 지표는 괜찮은 편이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은 지난달 514억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13.7% 늘었다. 8개월 연속 증가세다. 무역수지 흑자는 114억 달러로 집계됐다. 무려 65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다.

자본시장은 어떤가. 코스피 지수가 상반기에만 18% 올랐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2400선을 돌파했다. 2000선을 기준으로 보합을 거듭했던 '박스피' 장세는 추억으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수출 호조와 증시 활황 등의 호재에도 소비가 좀처럼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0.9% 감소했다. 소비 성향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음식·숙박업 생산은 같은 기간 3.2% 줄었다.

국내 소비는 이번달에 조금 살아났다가 다음달 하락하는 롤러코스터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하향하는 중이다. 내수 진작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가계의 빚이다. 가구당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은 33%를 넘어섰다.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있으니 지갑을 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당연하다.

최 후보자도 제1 과제로 가계부채 안정을 꼽았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소비가 위축돼 물가가 내려간다. 내려간 물가는 임금 하락으로 이어져 다시 소비를 위축시킨다. 그렇다고 대출을 무조건 옥죄는 게 답일까.

가계부채 중에는 부동산 대출 외에도 생계형 대출 규모가 상당하다. 대출을 막으면 서민층의 소비 여력이 더 악화할 개연성이 있다. 심지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일정 부분을 생활비로 쓰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야말로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다.

최 후보자의 어깨가 무겁다. 조금 우려되는 건 야전을 누비며 관치(官治)의 칼을 휘둘렀던 SD와 달리 최 후보자는 다소 고상한 영역에서 성과를 냈던 관료라는 점이다.

최 후보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일조했던 '최·신·최·강'의 일원이다. 기획재정부의 최종구 국제금융국장과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 최중경 차관, 강만수 장관을 일컫는다.

그는 전통적인 금융정책국 라인이 아니라 국제금융 라인으로 분류된다. 이력에서도 드러난다. 재정경제부 외화자금과장과 국제금융과장을 거친 뒤 부처명이 바뀐 기획재정부에서는 국제금융국장,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등을 역임했다.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과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지냈지만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컨트롤타워가 돼 진두지휘한 경험은 없다. 리스크 요인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궁극적으로 국민 소득이 늘어야 해결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핵심 공약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내세운 것도 어떻게든 취업률을 높여 소득 증대를 이루기 위해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문제인 정부의 경제라인에서 최 후보자는 마지막 퍼즐이다. 최 후보자를 금융 사령탑으로 결정한 문 대통령의 선택은 '신의 한 수'일까. 아니면 자충수로 기록될까. 그리 길지 않은 시일 내에 평가가 이뤄질 것 같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