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청와대를 떠나 은둔 생활을 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19년 만인 1998년 대구 달서구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되찾는다. 1992년과 1996년 총선에서 부산 지역에 출마해 2연속 고배를 마신 뒤의 일이다. 

이전까지 아무런 연(緣)이 없었던 두 정치인은 그 때부터 악연이라 불릴 만한 굴레에 함께 갇히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돼 이듬해인 2003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같은 시기 박 전 대통령은 '차떼기' 정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며 '천막당사'의 신화를 일군다. 당 대표 재임 시절 각종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의 완승을 거두며 노 전 대통령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로 올라선다. 

두 사람은 2004년 3월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놓고 정면충돌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을 이끌어내며 기세를 올렸지만 국민적 반감이 고조돼 역풍을 맞으며 총선 참패를 경험한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이었던 2007년 1월 정국 경색을 타개하기 위해 한나라당 등 야권에 대연정을 제안하자 박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 회자되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유명한 논평을 남겼다. 

정국 주도권은 보수 정치세력으로 완전히 넘어갔고 한나라당과 당명을 변경한 새누리당은 17대 이명박 정부와 18대 박근혜 정부를 잇달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8년 전인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부엉이 바위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다. 향년 64세. 

당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우병우 대검 중수부장은 검사장 탈락이라는 실패를 맛본 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박 전 대통령의 칼잡이 노릇을 하며 최순실씨 등의 국정농단을 묵인·방조한 혐의로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인물이 됐다. 지난해 박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할 당시와 같은 나이인 64세를 맞아 국정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 또다시 검찰로 이어지는 수사를 받으며 지난 3월 31일 구속됐고 4월 17일 재판에 넘겨졌다. 적용된 혐의는 592억원 규모의 뇌물수수를 비롯해 18개에 달한다. 사법적 처벌을 받은 전직 대통령 중 단연 으뜸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인 오늘(2017년 5월 23일)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으로 처음 법정에 섰다. 마지막으로 대중에 모습을 보인 지 53일 만이다. 다소 초췌해졌지만 엉성하게나마 올림머리를 고수했고 법정에서도 예의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앞에 놓은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적용된 혐의의 양형 기준이 하나같이 높아 중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계승자이자 박 전 대통령과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탓에 특별사면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 참석해 "노무현의 꿈을 시민의 힘으로 부활시키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 혐의 입증을 주도할 한 부장검사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돼 법정에 서는 모습은 불행한 역사의 한 장면일 수 있다"면서도 "대통령의 위법행위에 대한 심판이 이뤄져 법치주의를 확인해야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5월 23일은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등 21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 거목들의 영욕이 얽히고설킨 운명의 날로 한동안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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