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카카오 주도 경영 난항..중금리 대출시장 진출 무산되나

시중은행과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하던 인터넷전문은행이 출항 전부터 ‘반쪽 출범’ 위기를 맞았다. 정치권 내에서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이미 과포화된 중금리 대출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인터넷전문은행은 자금확충 루트까지 잃을 처지가 됐다.
◇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은행연합회 가입
국내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인 K뱅크는 이달 1일 은행연합회에 가입했다. 은행연합회에 신규 은행 회원이 가입한 것은 25년 만이다. K뱅크의 가입으로 정사원은 21개 기관으로 늘었다. 은행연합회 정사원기관은 1997년 35개였으나 외환위기 후 퇴출이나 인수합병으로 지난해 말 기준 20개로 줄었다.
앞으로 K뱅크는 30여 개의 전문위원회 등 각종 회의에 참여해 은행권 공동 현안 과제를 함께 논의한다. 또 ‘세금 우대 한도 시스템’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이 다른 은행에 가입한 세금 우대 상품 가입 한도 등을 조회 가능하다.
K뱅크 측은 운영 점검 등을 거쳐 3월 본격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미 금융결제원의 금융공동망과 한국은행의 전산망 연결 작업도 끝냈다. 은행연합회는 “K뱅크가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 與, ‘은산법’ 돌연 반대..“재벌 ICT기업, 금융산업 장악 위험 가능성”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예외적으로 산업 자본의 소유 규제를 완화한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던 국회가 돌연 재검토 입장을 밝혀 파장이 이는 형국이다. 산업자본 4% 소유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영업 개시를 앞둔 K뱅크와 현재 본인가를 진행 중인 카카오뱅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애초 카카오와 KT 등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나서며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된다는 기대감을 안고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의 은산분리 규제는 은행업에 있어 산업자본의 지분을 4%로 묶어두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이를 일시적으로 완화해 인터넷전문은행에 적용할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K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올해 본인가를 마치고 본게임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요원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산업자본의 50%는 어려워도 34%까지 지분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던 야당이 돌연 강경노선으로 입장을 틀은 데 따른 것이다.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문제 진단 토론회’에서 정무위원회 소속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산업자본이 금융회사를 사금고화하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고, 그 결과로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을 엄격히 통제해 왔다”면서 “인터넷전문은행 혁신에 대한 의문이 아직 큰 상황에서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진출 규제는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핀테크 산업 특성상 금융서비스의 혁신을 위해 ICT 기업에 한해 은산분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재벌 ICT기업'이 금융산업을 장악하는 위험 때문에 함부로 허용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K뱅크 2500억원·카카오뱅크 3000억원..중금리 대출시장 포기하나
앞서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후 3년간 약 25만명에게 약 7240억원, 10년간 총 3조6000억원 수준의 중금리 대출을 공급할 계획을 내놨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중금리 대출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사실상 저축은행을 경쟁자로 지목하고 나서 이들간 격돌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에 앞서 저축은행 대비 약 10%포인트 낮은 파격적 대출금리로 중금리 시장을 공략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K뱅크의 올해 여신 영업목표는 4000억원 규모다. 신용등급 4~6등급의 중신용자 1000만명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 완화 규정이 담긴 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인터넷전문은행의 자본금 확충은 힘들어진다. 현행 은행법에서는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주식 4% 이상을 보유할 수 없어 KT와 카카오가 주도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경영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지분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기존 금융주력자들이 지배하는 은행에 그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K뱅크의 자본금은 현재 2500억원, 카카오뱅크는 3000억원에 불과하다. SBI저축은행의 자기자본이 5000억원, OK저축은행은 3300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저축은행을 상대하기도 버거울 전망이다.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인터넷전문은행의 중금리 대출 시장 진출에는 장벽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저축은행은 물론 시중은행에서도 이미 다양한 중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는 등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저축은행보다 10%포인트 낮은 금리를 제공한다는 것도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중금리 대출 상품 중 금리가 가장 높은 것이 19.9%인데 이보다 10%포인트 낮춘다면 이익이 나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대형저축은행에서 판매하고 있는 자체 중금리 대출 상품의 경우 출시 1년여 만에 누적 실적 2000억원을 기록했지만, 실제 수익은 미미하다고 알려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