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확산에 자본주의 위기

2016년은 그야말로 이변의 해였다. 세계 정치·경제 판도를 장악한 화두라면 단연 브렉시트와 트럼프가 꼽힌다. 둘 다 설마 했던 돌발변수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날지, 리얼리티쇼에서 튀어나온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주목할 건 두 돌발변수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현재진행형으로 향방을 알 수 없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우선 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트럼프의 미국 대선 승리는 모두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지지를 기반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정치행태다. 이성적인 논리보다 감성적 호소와 선동을 앞세운다. 영국의 브렉시트 진영과 트럼프 대선 캠프는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극대화해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브렉시트·트럼프 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영국은 내년 3월 말에야 EU와 본격적인 탈퇴 협상에 착수할 예정이다. 영국이 EU 탈퇴 규정에 따라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면 2년 시한의 협상이 시작되는데 협상이 2년 안에 끝날 것으로 보는 이는 별로 없다.
트럼프는 새해 1월 20일에 공식 취임한다. 대선 과정에서 그가 선보인 청사진이 정책으로 실현돼 효과를 내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상당수 전문가는 입법 과정에서 공약의 강도가 희석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보호무역 같은 강경정책 수위가 낮아지면 다행이지만 강도 높은 재정부양 공약이 약해지면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꺾이기 쉽다. 미국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만큼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미국의 보호무역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포퓰리즘은 전염력이 강하다. 193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삽시간에 나치즘과 파시즘이 번진 게 한 방증이다. 내년에도 지속될 브렉시트·트럼프 파장은 포퓰리즘의 확산을 더 자극할 게 뻔하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조건을 놓고 아전인수식 줄다리기를 벌이고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면 다른 나라도 제 살길을 찾는 데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력했던 통화정책 공조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세계 경제가 아직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주요국 중앙은행은 벌써부터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년 만의 금리인상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새해엔 기준금리를 3번 더 올릴 계획이다.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도 통화부양에서 발을 뺄 태세다. 중국 인민은행도 새해엔 돈 풀기를 자제하는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펼 전망이다.
경제 성장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통화부양력이 약해지면 정부가 나서 재정지출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재정수지가 나빠지면 경상수지 개선 욕구가 커진다. 보호무역장벽을 높이기 쉽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전 세계 보호무역장벽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영국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국제 교역량이 2015년 1월부터 제자리걸음 중이라고 분석했다. 무역침체는 곧 세계화, 자본주의의 퇴보를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