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날 탈퇴"…中도 美 대체 못 해

10년 공든 탑이 사실상 무너졌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의 탄생을 예고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말이다. 도널드 트럼트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취임 100일 정책 청사진을 공개하면서 내년 1월 20일 취임하면 곧바로 TPP를 폐기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TPP를 "끔찍한 협정"이자 "미국의 잠재적 재앙"이라고 깎아내렸다.

TPP는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12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경제의 40%에 이른다. 그러나 트럼프가 TPP 탈퇴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TPP는 그야말로 앙꼬 빠진 찐빵이 되게 생겼다. TPP 참가국의 총 GDP(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이른다.

TPP는 지난 2월 최종 서명까지 본협상만 7년이 걸렸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 4개국이 구축한 환태평양전략적경제동반자협력체제(TPSEP)를 주춧돌로 삼았으니 실제로는 10년이 넘는 공이 들었다.

TPP 같은 무역협정이 발효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뒤따를 무역협정의 효과를 점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TPP를 놓고 공감하는 2가지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TPP가 모든 참가국 경제의 성장세를 더 북돋아줄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달러 기준으로 미국이 가장 큰 경제 성장 효과를 누리겠지만 베트남 같은 신흥국도 경제 규모에 비해 큰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위한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사진: 유튜브 캡처

경제학자들은 다만 일부 참가국과 산업의 손실은 불가피하다고 봤다. 또한 부작용이 낙관론자들의 예상보다 오래갈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를 비롯해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목하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트럼프는 TPP에서 탈퇴한 뒤 미국에 일자리와 산업을 돌려줄 공정한 양자무역협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맞춤형 무역협정을 맺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TPP의 효과는 단순히 경제적 손익으로 계산할 게 아니다. TPP가 앞으로 맺을 자유무역협정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까지 자유무역협정은 관세장벽을 허무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선진국의 관세 수준은 이미 매우 낮아 무역협정으로 이를 더 낮추는 건 큰 의미가 없다. TPP는 오히려 노동, 환경, 지적재산권 등 기존 무역협정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 민감한 이슈에 대한 통상의 룰을 구축하는 데 역점을 뒀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선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4년에 낸 회고록 '어려운 선택'(Hard Choices)에서 TPP의 의의를 "관세장벽을 낮추고 노동과 환경, 지적재산권 분야의 기준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TPP는 노동자 권리 보호, 환경 규제, 국영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제한 등 글로벌 무역환경 수준을 높이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무역협정에서 국영기업 문제를 다룬 건 TPP가 처음이다. 

미국의 TPP 탈퇴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축소를 의미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이 참여하지 않는 TPP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다른 참가국들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이미 중국이나 러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과 힘겨루기를 해온 중국은 호기를 맞은 셈이다.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는 데 더 속도를 낼 태세다. RCEP는 중국과 아세안(ASEAN),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16개국의 경제통합 구상이다. TPP에 서명한 12개국 가운데 7개국이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에서든, 미국이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아 추진할 양자무역협정에서든 TPP에서 힘겹게 다룬 사안들이 수면 아래 잠길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글로벌 무역환경이 퇴보하게 되는 셈으로 이는 결국 모두에게 해가 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TPP 탈퇴로 남은 구멍을 쉽게 메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