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미국 증시 투자자들에게 지난 9월은 끔찍한 달이었다. 증시가 추락한 건 물론이고, 주가 하락에 대비해 투자한 자산들도 덩달아 내리막길을 탔다. 미국 국채, 금, 비트코인, 변동성지수(VIX) 등이 투자자들의 증시 손실을 메워주기는커녕 오히려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맥킨토시는 5일자 '스트리트와이즈'(Street Wise) 칼럼에서 지난달처럼 헤징(위험회피) 투자가 완패한 건 드문 일이지만, 투자자들이 이런 환경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증시가 급락할 때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고 경고했다.

안 그래도 9월은 미국 증시 성적이 1년 중 가장 부진한 달로 통한다. 지난달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2.3%, S&P500 3.9%, 나스닥은 5.2% 추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공포로 증시가 폭락한 지난 3월 말 이후 이어진 랠리 가운데 첫 월간 하락세다. 뉴욕증시 주요 지수의 9월 성적으로는 2011년 이후 최악이다.

그동안 랠리를 주도해온 대형 기술주에 닥친 조정의 충격이 전방위로 번졌다. 투자자들이 믿고 있던 우량주마저 시장보다 못한 성적을 냈다. 그나마 소형주와 주가 수준이 낮은 가치주가 대형 기술주를 비롯한 성장주보다 선전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겨주고 있긴 마찬가지라고 맥킨토시는 지적했다.

그는 시장보다 더 빨리 등락하는 '하이베타'(high beta) 종목과 등락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로우베타'(low beta) 종목 또한 지난달에는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자료=야후파이낸스]
[자료=야후파이낸스]

문제는 주가 하락 위험에 대비한 투자조차 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국채가 대표적이다. '안전자산'인 국채는 '위험자산'인 주식과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는 지난 3월 말 S&P500지수가 2월 고점 대비 35% 가까이 추락하자 10% 대의 수익으로 증시 손실을 어느 정도 메워줬다. 

9월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투자수익률이 상당기간 0% 수준을 밑돌며 주식 투자자들에게 손실 부담을 가중시켰다. 

미국 국채가 수익을 내지 못한 건 국채 금리가 더 떨어질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채권은 금리가 하락해야 가격이 오르는데,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최근 역사적 저점에 가까운 0.7% 수준에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 기조 아래 국채 등 자산을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재개한 게 국채 금리 하락의 배경이 됐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FRED]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 추이[자료=FRED]

일본도 1990년대에 주식과 국채 가격의 동반 하락을 경험했다. 일본은행(BOJ)은 당시 자산거품 붕괴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인하에 나서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를 도입했는데, 이때 주가와 함께 국채 금리도 추락했다. 

맥킨토시는 연준이 단기 국채를 팔아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오퍼레이션트위스트(OT)를 재개하면 국채 금리가 더 떨어질 수 있겠지만,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0%까지 떨어져도 투자수익률이 7%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일본과 유럽처럼 '마이너스(-) 금리'를 용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채 금리를 더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인데, 미국에서는 연준 등 정책당국의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은 게 문제다. 

맥킨토시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해도 한숨 돌릴 여유밖에 얻지 못할 것으로 봤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원칙적으로 금리를 -1%까지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맥킨토시는 10년 만기 독일 국채 금리가 이 수준이 돼도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주가 하락 위험에서 투자자들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금값 추이(온스당 달러)[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금값 추이(온스당 달러)[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주가 하락 대비에 도움이 안 되기는 금과 비트코인도 마찬가지였다. 두 자산은 궁극적인 방어자산으로 꼽혀왔지만, 주식처럼 한동안 투기 수요가 몰린 게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맥킨토시는 투기거품이 터지면 주식은 물론 금과 비트코인도 손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난달 두 자산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지난달에는 VIX도 떨어졌다.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VIX는 월가에서 '공포지수'로 통한다. 뉴욕증시 대표지수인 S&P500의 옵션가격을 반영한다. S&P500지수가 하락할 것 같으면, 자산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에 수요가 몰려 VIX도 오르는 게 보통이다. 결국 VIX는 S&P500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는 게 정상인데, 9월 들어서는 S&P500지수와 동반 하락했다.

변동성지수(VIX) 추이[자료=FRED]
변동성지수(VIX) 추이[자료=F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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