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시험대 다시 오른 '헬리콥터머니'

코로나19 확산에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경제활동을 멈춰 세우고 있다. 

안 그래도 취약한 세계 경제가 다시 골 깊은 침체 수렁에 빨려들고 있다는 우려 속에 글로벌 금융시장도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와 세계 경제·금융시장의 역학관계를 3회에 걸쳐 짚는다.<편집자주> 

"바닥을 종잡을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장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에 시장이 바닥을 알 수 없는 수렁으로 빨려들면서다. 시장을 집어삼킨 공포는 예방·치료제가 없는 코로나19처럼 세계 각국이 쏟아내는 긴급대책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나온 영국 경제분석업체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의 경고는 섬뜩하다. EIU는 18일(현지시간) 낸 보고서에서 세계 인구 절반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봤다.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이 코로나19 발병 전에 예상한 2.3%의 절반도 안 되는 1%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뒤따랐다. EIU는 그러면서 코로나19가 '계절성 질병'이 돼 내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에 또다시 유행할 공산이 큰데, 백신은 내년 말에도 출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연합뉴스]

◇제로금리·양적완화...'금융위기 극약처방' 재개

코로나19발 경기침체 공포에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이례적인 부양 공세에 돌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0~0.25%로 1.00%포인트 낮춘 게 대표적이다. 연준은 7000억달러(약 892조원) 규모의 양적완화도 재개하기로 했다.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매입해 돈을 풀겠다는 얘기다. 제로금리·양적완화는 연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처음 도입한 통화완화 패키지다. 코로나19 사태가 10여년 전 위기만큼이나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셈이다.

연준은 17일 기업어음(CP)마저 사들이겠다고 했다. 이로써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쓴 비상카드를 모두 동원하게 됐다.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연준을 따라 나섰다. 뉴질랜드와 홍콩은 기준금리를 각각 0.75%포인트, 0.64%포인트 낮췄고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인하했다. 한국에서 0%대 기준금리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선별적 지급준비율 인하를 통해 5500억위안(약 95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 나섰고, 일본은행(BOJ)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액을 연간 12조엔으로 2배 늘리기로 했다. 금융시장에 그만큼의 돈을 더 쏟아붓겠다는 얘기다.

유럽중앙은행(ECB)도 18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통해 새로운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로 했다. '신(新)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의 이번 양적완화는 7500억유로(약 1132조원) 규모로 연말까지 시행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다만 이날 낸 긴급성명에서 "필요시 양적완화 기간과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했다. 

◇'백지수표' 살포에 기업 국유화 카드도  

각국 정부도 재정부양에 안간힘을 쓰며 중앙은행들의 통화부양을 뒷받침하는 '쌍끌이 부양'에 나섰다.

재정부양 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올해 말 재선에 도전하는 그에겐 상황이 더 절박할 수밖에 없다. 

18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총 1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국민 1인당 최대 2000달러(약 250만원)의 수표를 지급하는 방안을 담았다. 전체 부양 규모의 절반인 5000억달러가 여기에 드는 재원이다. 사실상 '백지수표' 살포에 나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상원에서 넘어온 코로나19 긴급예산법안에도 서명했다. 외신들은 이번 예산안 규모가 1000억달러가 넘는다고 전했다. 

일본도 다음달 마련할 긴급경제대책과 관련해 현금 지급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총 규모가 최소 15조엔(약 175조원)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호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이 이미 현금 지원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유럽에서도 각국이 재정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영국과 스페인은 각각 국내총생산(GDP)의 15%, 20%에 이르는 정책 패키지를 내놨다. 독일은 최소 5000억유로 규모의 대출 보증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3일 370억유로 규모의 투자기금계획을 발표했다. CNN은 유럽 정부들이 내놓은 경기부양책 규모만 1조5000억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기업 국유화 카드도 등장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6일 법정관리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국적 항공사 알리탈리아의 국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도 같은 움직임을 시사했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17일 "프랑스의 대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쓰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정 투입이나 국가의 지분인수가 될 수도 있다. 필요하다면 국유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더 쓸 카드 남았나?"...금리상승·유가폭락 비상

문제는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하는 일련의 긴급조치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는 점이다. 연준의 제로금리 회귀 결정에도 이튿날(16일) 미국 뉴욕증시는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이후 최악의 폭락장을 연출했다. 다우지수는 3000포인트 가까이 추락했고, '공포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높이 치솟았다. 급기야 다우지수는 18일 2017년 2월 이후 처음 2만선 아래로 밀렸다.

월가에서는 글로벌 증시 대폭락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건 "더 쓸 카드가 뭐가 있겠느냐"는 불신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최근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뭐든 다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상 남은 카드가 많지 않다는 점이 시장의 공포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대침체'(Great Recession)나 유럽 재정위기 때도 똑같은 우려가 제기됐다.

연준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금융위기 여파와 지난해부터 구체화한 경기침체 우려 속에 통화부양 여력을 상당부분 소진했다. 시장에서는 추가 금리인하와 양적완화 확대 등을 바라지만 여의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전부터 각국 정부에 재정지출을 늘리라고 권고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 때 눈덩이처럼 쌓아올린 부채 탓에 재정부양력도 신통치 않은 상태다. 더욱이 재정정책에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기 쉽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호주의 유력 펀드매니저 가운데 하나인 해미시 더글라스 마젤란파이낸셜그룹 회장은 18일 낸 투자노트에서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제의 충격에 맞서기 위한 재정부양 규모가 약 26조달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는 돼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연준의 금리인하 조치에도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미 1조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공공부채가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CNBC는 이같은 우려가 투자자들의 현금 수요를 늘려 금리 상승, 달러값 폭등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 경제가 침체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나쁜 징조라고 덧붙였다.

최근 국제유가 폭락사태도 코로나19발 글로벌 침체 우려가 구체화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18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24.4%(6.58달러) 추락한 배럴당 20.37달러를 기록했다. 2002년 2월 이후 약 18년 만에 최저치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급락이 간신히 빚을 내 셰일개발을 주도했던 미국 에너지기업들의 연쇄 파산을 일으켜 미국 경제는 물론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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