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리세션 팬데믹' 공포에 떠는 금융시장

코로나19 확산에 세계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계 각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고 경제활동을 멈춰 세우고 있다. 

안 그래도 취약한 세계 경제가 다시 골 깊은 침체 수렁에 빨려들고 있다는 우려 속에 글로벌 금융시장도 연일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19와 세계 경제·금융시장의 역학관계를 3회에 걸쳐 짚는다.<편집자주> 

미국 뉴욕증시에서 지난주 강세장 종언 선언이 있었다.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수렁에서 반등해 11년간 이어온 역대 최장기 강세 행진이 끝나버린 것이다. 금융위기보다 더한 충격이 닥칠 것이라는 공포가 투자자들을 압박하면서 글로벌 증시도 약세장에 돌입했다.

◇'약세장' 빠진 글로벌 증시

블룸버그에 따르면 중국을 시작으로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지 50여일 만에 글로벌 증시 시가총액이 1경9000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0배 넘는 투자금이 사라진 셈이다.

블룸버그가 86개국 증시 시총을 집계한 결과, 지난 12일 현재 시총은 72조4869억달러로 코로나19 사태 이전 고점인 1월 20일(89조1565억달러)보다 16조6696억달러(18.7%) 줄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52일 만에 1경9475조원 감소했다. 2018년 기준 한국 GDP의 1.3배쯤 된다.

이로써 글로벌 증시는 약세장 기로에 서게 됐다. 보통 주가가 전 고점보다 20% 이상 하락하면 약세장으로 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으로는 세계 증시는 이미 약세장에 돌입했다. 신문은 글로벌 시총이 지난 9~13일에만 약 10조달러 줄었다고 15일 보도했다. 13일 현재 시총은 약 68조9000억달러. 역대 최대였던 지난 1월 20일 고점(88조달러)에 비하면 19조달러, 약 22% 감소했다.  

지난주 글로벌 증시는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진 이후 최악의 '패닉'에 빠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1일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게 직격탄이 됐다. 미국 뉴욕증시의 경우 1987년 10월 19일 대폭락 사태, 이른바 '검은 월요일'(블랙먼데이) 이후 골이 가장 깊은 폭락장을 연출했다.

뉴욕증시의 경우 지난주 주요 지수가 10% 안팎의 낙폭을 기록했다. 다우지수는 10.36% 추락했고, S&P500과 나스닥지수는 각각 8.79%, 8.17% 떨어졌다.
 

[자료=블룸버그]

◇'리세션 팬데믹' 공포 확산

코로나19 사태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얼마나 동요하고 있는지는 월가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지수는 최근 70선을 크게 웃돌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시자의 공포를 부채질했다. 금융위기 이후 찾아온 '대침체'(Great Recession)보다 더 큰 침체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면서다.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이 된 것처럼 경기침체가 전 세계로 번질 수 있다는 '리세션 팬데믹' 우려가 투자심리를 냉각시키면서 공포지수를 띄어 올렸다.

세계 경제가 이미 침체에 빠졌다는 진단 속에 암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코로나쇼크]멈춰선 세계 경제..."이미 침체 빠졌다"http://www.businessplus.kr/news/articleView.html?idxno=22135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며 "최소한 올해는 지속될 것 같은데,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충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중국에 의존한 수출 비중이 큰 싱가포르의 경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서 비롯된 경기침체 신호는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2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역대 최저인 35.7로 곤두박질친 게 대표적이다. 블룸버그는 "중국 경제가 사실상 멈춰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16일 발표한 1∼2월 산업생산은 1년 전보다 13.5% 급감했다. 중국의 1~2월 산업생산이 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으로 번지면 올해 중국의 성장률이 3.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중국과 세계 경제 자웅을 겨루는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도 갈수록 깊이를 더하고 있다. 세계 양강(G2) 경제의 불안은 리세션 팬데믹 공포를 부추기기 충분하다. 

월가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경고가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는 15일 미국 경제 성장률이 올 1분기에 0%, 2분기에는 -5%를 기록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그러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2%에서 0.4%로 낮춰 잡았다. 골드만삭스는 가계와 기업의 소비, 투자 위축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가장 큰 악재로 꼽았다.

경기침체는 보통 2개 분기 이상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경우를 말하는데, 골드만삭스는 미국에서 경기침체(또는 확장)의 개시와 종료를 공식 선언하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이번에는 단 1분기만의 역성장만으로도 경기침체를 공식화활 수 있다고 봤다.

[사진=연합뉴스]

◇"바보야, 문제는 유동성이야!"

시장에서는 진짜 무서운 건 신용경색 위기, 유동성 위기라는 얘기가 돈다. 

마켓워치는 지난주 미국 뉴욕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한 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12~13일 금융시스템에 1조5000억달러가 넘는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탓이라고 짚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나온 연준의 발표가 유동성 위기 공포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켄 일겔크 캐피톨시큐리티스매니지먼트 수석 경제전략가는 마켓워치에 "최대 이슈는 코로나가 아니라 유동성 위기의 부상"이라며 "솔직히 무섭다.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시장의 확신을 산산조각내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도 최근 월가의 악몽은 전적으로 유동성에 대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금융자산 가격을 뒤흔들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거품 논란 속에 간신히 유지된 시장의 균형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도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동성 위기가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매체는 특히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손실을 흡수할 자본력이 없다며 대출자와 납품업체, 여기서 일하는 근로자와 임대주의 줄도산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540억달러를 운용하는 바르마뮤추얼 연금보험의 레이마 리촐라 최고투자책임자(CIO)도 15일 블룸버그에 중앙은행들의 긴급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금융여건이 빠듯해지고 있다는 신호가 뚜렷하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한 몇 안 되는 전문가 가운데 하나인 피터 시프 유로퍼시픽캐피털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마켓워치에 유동성 위기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문제는 핀이 아니라 거품이고, 거품이 일단 (핀에) 찔리면 돌이킬 수 없어 거품에서 공기가 빠져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면 다른 뭐라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한 강세장 속에 부풀어오른 자산거품이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으로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시프는 이런 이유로 코로나19가 '증시 대학살'이 마침내 시작될 것이라는 자신의 베팅을 확고하게 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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