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반도체 산업에는 '슈퍼 호황'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스마트폰 등 고성능 전자제품과 4차 산업혁명 본격화로 낸드플래시와 D램 수요가 급증한 덕이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지속하면서 자연스럽게 반도체 가격도 올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4.6%를 기록하며 인텔(13.8%)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반도체 부문 경영실적도 매출 74조원, 영업이익 34조원을 달성한 것으로 추산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매출 30조1094억원, 영업이익 13조7213억원으로 사상 최대 경영 실적을 경신했다.
양사의 질주 덕에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57.4%나 증가한 979억4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단일 품목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액 9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3%대 진입을 이끈 주역이라 평가할 만하다.
올해 들어서도 반도체 수출은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 20일기준 전년 대비 41.2% 급증하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수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하며 주춤한 가운데 반도체만 선전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용 반도체 수요 둔화 우려가 있지만, 4차 산업혁명 수요가 견고해 반도체 업황 호조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서버 D램 가격이 여타 제품보다 20~30% 이상 높아 D램 평균제품가격은 높아질 가능성이 점쳐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여전히 우호적 환경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우리 기업을 향한 미국, 중국 등의 견제다. 최대 위협은 미국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자국 반도체 기업 요청에 따라 우리 반도체 기업에 대해 기술 침해 여부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ITC는 3건의 기술 침해에 대해 조사 중이다. △테세라 어드밴스트 테크놀로지가 삼성전자에 제기한 웨이퍼 레벨 패키징에 대한 특허권 침해 여부 △넷리스트와 SK하이닉스 간 메모리 모듈 기술에 대한 특허권 침해 여부 △비트마이크로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SSD 밸류체인 세트업체를 대상으로 제기한 기술 특허권 침해 여부 등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등에 업고 미국 기업들이 노골적인 견제에 나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ITC의 권고안에 따라 강력한 수입 세탁기 세이프가드를 발표하며 통상압박을 지속하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30일 연두교서에서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다시 한번 천명하며 통상압박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중국 역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통상압박을 전개 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RDC)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가격 담합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NRDC가 우리 기업에 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이처럼 무역규제 수단을 동원한 통상압박에 우리 기업과 정부가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수출 주역인 반도체마저 타격을 입으면 올해 경제성장률 3% 달성에 악영향이 불가피해서다. 특히 최근 미국의 세탁기 세이프가드 사태에서 겪었듯이 사후 대응은 우리 기업의 피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 직후 WTO에 즉각 제소 방침을 밝혔지만, 트럼프 정부는 이미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하는 WTO 판정은 이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정부는 WTO 승인 하에 무역보복을 가하는 방법도 언급했지만, 역효과 등이 우려돼 사실상 보복조치는 힘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결국 기업들 개별적으로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상황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CIT 소송을 통해 과도한 무역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현대제철과 넥스틸은 유정용 강관에 대한 미국의 반덤핑 최종 판정에서 예비 판정보다 대폭 오른 관세를 부과받자 CIT를 통한 소송에 들어간 바 있다. 금호석유화학도 미국 정부가 한국산 합성고무에 부과한 반덤핑 관세(44.3%)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김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 통상압박이 세탁기, 태양광에 이어 반도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비트마이크로가 제기한 소송은 SSD 밸류체인의 세트업체도 포함돼 한국 기업에 대한 통상압박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제한적인 공급증가 여력, 안정적 서버 수요를 감안하면 D램 수급이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반도체 업황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