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의혹으로 공석이 된 우리은행 차기 행장 선임을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적자금을 원활하게 회수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차기 행장 선임과정에 개입해야 할지 말지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점주주 형태로 민영화한 우리은행에 정부가 개입할 경우 관치 회귀 논란이 부담스럽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번 주 후반 이사회를 열고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구성 방식과 주주총회를 위한 주주명부 폐쇄 일자를 논의한다.

관건은 임추위에 정부 지분 18.52%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를 대표하는 비상임이사가 들어갈지다. 이는 정부 직접 개입의 가늠자로 읽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과점주주 체제 형태로 실질적 민영화에 성공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1대 주주다. 동양생명(4.0%), 미래에셋자산운용(3.7%), 유진자산운용(4.0%), 키움증권[039490](4.0%), 한국투자증권(4.0%), 한화생명(4.0%), IMM PE(6.0%) 등 7개 과점주주들은 모두 29.7%를 올해 초 최종 매입했지만, 개별 보유지분은 정부에 크게 못 미친다

정부는 올해 초 행장 선출 과정에서는 민영화 이후 우리은행의 자율경영에 대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임추위에 예보측 비상임이사를 제외했다.

다만, 그러면서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우리은행의 7일 종가는 1만5600원으로 공적자금 회수의 이익분기점(주당 1만4200원) 근처까지 떨어졌다. 지난 7월에만 해도 2만원에 육박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정부 입장을 확정하지 않고, 각계의 의견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간 내부갈등으로 특혜채용 의혹이 폭로되면서 우리은행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최대주주인 예보가 임추위에 참여해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으면 추후 감사원 감사 등에서 직무유기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예보의 비상임이사가 임추위에 들어가건, 안 들어가건 궁극적인 책임은 금융위원회와 예보가 진다"면서 "들어가지 않으면 주주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은행의 과점주주들은 예보가 이번에도 임추위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과점주주에게 지분을 매각하면서 정부가 우리은행 경영에 정부나 예보의 관여 없이 과점주주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런 의미로 올해 초 행장 선출 과정에서도 임추위에서 빠졌는데 이제 와서 약속을 어기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정부 관치 논란으로 주가가 하락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실제로 지난주 이 행장이 사퇴하고 예보가 임추위에 들어갈 수 있다며 관치 논란이 나오자 우리은행 주가는 이번 주 들어서만 5% 넘게 떨어졌다.

우리은행 이사회 관계자는 "정부가 지분을 추가로 매각해야 하는데 이렇게 경영 자율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지분을 사려는 투자자가 있겠느냐"며 "왜 관치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임추위에 들어올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사회 관계자도 "예보가 임추위에 들어오면 그다음은 정부가 원하는 인사를 행장에 앉히겠다는 것 아니겠냐"며 "과점주주나 은행 노조 등 누구도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금융노조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한 민간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과점주주에 대한 매각을 결정하고 민영화의 길을 걸어왔는데 돌아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채용비리와 정부가 다시 은행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별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민영화된 우리은행의 행장 인선에까지 정부가 관여한다면 문재인 정부 또한 관치금융을 청산할 의지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정부는 우리은행 민영화 당시의 약속을 상기하고 그 과정에 절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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