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시계제로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은행을 덮친 사정(司正) 바람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기 어렵고, 현시점에서 채용비리에 집중된 의혹의 범위 역시 어느 수준까지 확대될지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 7일 서울 중구의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2일 사퇴한 이광구 전 은행장의 사무실도 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에서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와 국정원 직원 등 유력 인사들의 청탁을 받고 채용비리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수사 칼날이 무뎌지기는커녕 더욱 예리해지는 모양새다. 표면적으로는 채용비리 의혹 관련 수사이지만 기실은 '서금회(서강대 출신의 금융인 모임)' 출신인 이 전 행장 찍어내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전 행장은 국회에 출석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존경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금융권 내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꼽힌다. 보은인사를 위한 자리 비우기 차원을 넘어 문재인 정권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성향을 가진 셈이다.

금융권이 기업은행을 불안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도진 기업은행장은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부행장에서 행장으로 내부 승진을 한 형식이었지만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때라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김 행장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금융위 부위원장 출신인 정찬우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물론 친박 인사들의 뒷배가 작용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전방위로 훑고 있는 사정당국이 기업은행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기업은행도 최근 수년간 40명 이상의 낙하산 인사를 영입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KB금융지주의 내홍도 결국 수사 대상이 됐다. 경찰은 지난 3일 KB금융지주 임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윤종규 회장의 연임 여부를 놓고 노조가 찬반 조사를 벌이던 중 사측이 조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노조는 사측이 윤 회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사측은 사실무근이라고 강변하지만 경찰은 윤 회장 소환 시기를 조율 중이다.

문제는 현재 업무방해와 부당노동행위 수준인 의혹의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KB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서 당시 정권 실세들 간의 알력이 인선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전언이 돌고 있다. 사실관계 확인 여부에 따라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혼돈기에 금융당국 수장은 은행장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향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안전판 역할 수행과 스타트업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고 한다. 덧붙여 몸집 불리기나 해외 진출 자제를 촉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배구조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현 정부의 금융 홀대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금융권은 만신창이가 됐다.

이번 사정 바람이 지나가면 친(親)정권 인사들이 주요 금융회사의 경영권을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지난 보수정권 9년의 폐단은 답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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