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배상안 논의 '급물살'에 KB도 준비 작업
다만 판매액·배상규모 '조 단위'…"이사회는 아직"
ELS 판매 부추겼던 KPI 개편도…원금 비보장 제한

'조 단위' 손실이 발생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의 후폭풍 속에 KB국민은행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일부 은행들의 자율배상 논의와 절차가 본격화되면서 판매량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도 배상안 마련 준비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고위험상품 실적 확대를 유도했던 핵심성과지표(KPI)도 개선했다.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 사진=KB국민은행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 / 사진=KB국민은행 

◇국민은행도 ELS 배상안 준비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투자자 손실과 관련해 우리은행에 이어 하나·농협은행이 자율배상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KB국민은행도 배상안 논의를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은행 관계자는 "자율배상에 대한 (배상 비율을 정하기 위한 ELS 가입자 분석 등) 전수 조사 중"이라며 "이후 시뮬레이션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앞서 지난 22일 분쟁조정 기준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은행권에서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린 건, ELS 판매액이 적어 내부 검토가 신속하게 진행됐고 배상 규모 역시 덜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그러나 KB국민은행은 판매액이 8조원이 넘는 등 ELS 판매 규모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자율배상액이 수천억원에서 최대 조 단위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개별 사례 및 배상 규모를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이사회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부 매체에선 임시 이사회 소집이 이번 주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금융감독원의 과징금 부과 등 제재 절차가 4~5월에 본격화될 만큼 내달 초에 이사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국은 판매사 배상 노력에 따라 참작이 가능하다는 방침이다.

현재 국민은행은 배상액을 1분기 혹은 2분기 실적에 충당부채 및 영업외손실로 모두 반영하는 방안과 여러 분기에 걸쳐 적용하는 안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타 시중은행들이 현재 3월 안으로 이사회 자율배상 여부를 매듭짓기 위해 서두르는 것은 배상액 추정치를 최대한 1분기 충당부채로 반영하기 위함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국민은행은 그럴 가능성이 작아졌다. 

국민은행이 배상 비율 분석 등 시뮬레이션 완료 후 이사회를 소집하게 되면 그간 추산한 배상 규모 등을 보고하고 관련 손실을 충당부채로 비용 처리할 것을 승인 요청할 예정이다. 이후 은행은 본격적으로 투자자들에 대한 자율배상 절차에 돌입하게 되는데, 다만 투자자는 100% 배상을 주장하고 있어 협의 단계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국민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6조1500억원이며, 이 중 상반기 물량은 4조7447억원에 이른다. 상반기 은행권 전체 홍콩 ELS 손실액은 H지수 5700선 가정 하에 총 5조980억원(1·2월 손실 확정액 반영)으로 추산된다.

◇ ELS 사태 부추긴 KPI 개편도 나서 

국민은행은 홍콩H지수 ELS 판매가 집중되지 않도록 성과평가지표(KPI, Key Performance Indicator) 개편에도 나섰다. 올해 상반기부터 원금 비보장형 구조화 상품의 판매 비율 제한을 강화하는 것. 2020년에는 각 영업점의 상품 판매 금액 중 70%까지 ELS를 판매할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이 비율이 20%로 떨어졌다. 20% 초과~40% 이하일 때는 3~10점 감점, 40% 초과시 10점을 깎도록 했다. 

그간 국민은행의 상품 분산 세부평가기준에선 지역본부에서 포트폴리오에 홍콩 ELS 상품을 최대 60%까지 담아도 감점이 없었다. 70% 초과일 때 2점 감점, 60% 초과~70% 이하일 때 단 1점을 깎는 것뿐이었다. 

2021년 국민은행의 핵심성과지표는 ELS 판매를 무리하게 부추겼다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핵심고객 가치증대, 고객자산 총운용자산(AUM), 개인 고객 가치증대, 위험조정이익, 신규&시너지이익 등 총 5개 지표를 통해 판매실적을 KPI에 반영했었는데, 이에 따라 그해 상반기 성과평가지표 950점 중 ELS 관련 점수가 12.64점이 되는 등 비중이 컸다. 은행원들이 인사와 성과급 등을 좌우하는 KPI 점수에 사활을 거는 것을 고려한다면, 은행이 무리하게 고위험상품 판매를 부추긴 셈이다. 실제로 올해 만기도래하는 13조2000억원가량의 ELS는 2021년 팔린 것이다.

김슬기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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