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이력 있으면 치료 후 수년 지나야 실손가입 가능
정신의학계 "평등권 침해하는 차별…잘못된 인식 바꿔야"

사진=연합뉴스
우울증 등 정신질환 환자 수가 늘고 있지만 보험업계는 손해율을 이유로 가입 장벽을 높게 쌓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우울증 증세가 느껴져 정신과 진료를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병원으로 발길이 가지 않는다. 정신과 진료 이력이 있으면 실손보험 등 보험 가입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A씨는 정신적 고통을 해소하지 못해 애가 타는 상황이다.

우울증 등 정신질환 환자 수와 진료비도 늘고 있지만 관련 보험사들은 가입 장벽을 높게 쌓고 있다. 관련 상품을 판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손해율 상승을 이유로 실손보험 가입도 까다롭게 한다. 소비자와 의료계 등에서는 정신과 환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20일 최영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신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017년 222만775명에서 2021년 302만1149명으로 36.0% 증가했다.

정신질환 유병률은 성인 4명중 1명 꼴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성인 5511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정신장애 평생유병률은 27.8%로 나타났다.

정신질환이 늘어나자 금융당국은 지난 2015년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2016년 1월부터 판매하는 4세대 실손보험부터 우울증, 조울증, ADHD등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에 해당하는 정신질환으로 치료하면 보장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보험사는 정신질환 상품 취급에 여전히 소극적이다. 통상 우울증 진료이력을 갖고 실손보험에 가입하려면 치료를 마친 후 최소 1~5년이 지나야 보험 심사와 인수여부를 검토한다. 

인터넷 보험 커뮤니티를 보면 우울증 진단을 받은 이후 보험 가입을 알아봤지만 대부분 보험사들이 가입을 거절했다고 호소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실상 가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메리츠화재, 현대해상 등 일부 손해보험사는 과거 정신질환을 담보하는 상품을 출시했으나 이후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현재 어린이보험에서만 청소년기의 정신건강 관리 목적으로 보장한다.

보험사들이 정신질환 상품 취급을 꺼리고 관련 환자의 다른 보험 가입을 엄격하게 하는 것은 관리가 힘들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신질환은 자살, 상해 등 후속 사고 등 병력자가 어떤 위험을 일으킬지 예측이 불가해 위험손해율 산정이 어렵다"며 "가장 큰 면책 사유인 자살과 연관돼 있어 분쟁 등 관리의 어려움도 따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단순히 우울증 한가지 만으로 보험인수를 제한하는 정책은 없지만 여러번 치료했거나 약물치료 등 치료기간이 길다면 보험인수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와 달리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는 경증 정신질환이나 중증으로 인해 취업이 불가능한 상태를 보장하는 보험도 있다.

미국의 한 보험사는 우울증으로 내원 치료를 하거나 2주 이상 불안장애에도 업무가 가능한 경우 보험에 정상 가입 또는 할증을 통해 가입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양극성 장애, 지적장애 등 중증으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만 가입을 거절한다.  

일본에서는 정신질환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 보험도 보장하는 '취업 불능보험'을 운영한다. 니혼생명의 경우 우울증, 스트레스장애, 조현병 등 정신질환으로 60일 이상 입원하거나 장애등급으로 판정돼 취업할 수 없다고 판정되면 매월 생활비를 지급한다.

이러한 정신의학관련 의료계와 인권위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보험사의 인수 방침에 '평등권을 침해한 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보험사 2곳에 실손보험 가입을 평등하게 해야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에 진정한 우울증 환자의 실손의료보험 가입을 구체적 고려없이 일률적으로 거부 또는 배제했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보험사에 보험인수기준을 보완하고 인수여부를 재심사 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단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항우울제를 복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위험률을 높게 평가해 실손보험 인수를 거부한 행위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관련 의료업계에서도 민간보험사의 실손보험 차별을 철폐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보험가입, 직장취업 등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선 안된다"며 "정신과 치료에 대한 거부감과 잘못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도 엄연히 영리목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자로 손해율이 높은 상품을 적극 수용하기도 어려운 여건"이라며 "유병자보험 등 일부 담보에선 정신질환 이력에도 가입이 가능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자혜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