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갈이(추경·秋耕)는 우리 민족의 오랜 농사 풍습이다. 추수가 끝난 뒤 논·밭을 뒤집는 가을갈이를 하면 땅속의 병균과 해충이 겨울 중에 죽고 지면의 유기물이 땅속에서 부식돼 거름이 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듬해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작업이다.

한정된 토지 내에서 먹고 살 만큼의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매년 절박한 심정으로 추경에 나서야 했다. 생사의 기로에 선 한국 경제도 좀 다른 의미의 추경(追更)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 하반기 11조원 규모의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했지만 여야 정쟁으로 국회 통과가 난망(難望)이다. 조선업 부실 책임을 규명하는 청문회 개최를 앞두고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 이른바 '최종택' 3인방의 증인 채택 여부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해서다.

여야의 입씨름 속에 경제 회생을 위한 귀중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 정부 계획대로 11조원 규모의 추경을 집행하면 국내총생산(GDP)이 0.3~0.4% 정도 늘어난다. 한국은행은 올해 GDP 성장률을 2.7%로 예상했다. 대단히 낙관적인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글로벌 주요 투자은행(IB)들의 예상치는 2.3~2.4% 정도다. 추가 재정 투입은 2%대 경제성장률을 방어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숫자놀음을 차치하더라도 추경은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다. 특히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재정 확대 정책의 실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정부는 추경안에 사회간접자본(SOC) 및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계획을 담았다. 또 5만명 이상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새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면서 국가 경제의 성장동력도 확충할 수 있는 대안이다. 

내수진작을 위해서도 추경의 조기 집행이 중요하다. 추석 전에 자금이 풀려야 하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 22일 추경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되자 시장은 극심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국내 증시에서 추경 수혜업종으로 꼽혔던 건설·철도·유통·서비스업 지수는 나흘 연속 미끄럼을 탔다.

대우조선해양을 누가 망가뜨렸는지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제 전반에서 감지되는 위험신호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경제 살리기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가을갈이는 최대한 일찍 시작해 깊게 파내야 한다. 늦어지거나 깊이가 얕으면 냉기가 스며들어 땅이 척박해지고 농사도 망칠 수밖에 없다. 때를 놓치면 다 헛것이라는 선조들의 외침에 귀 기울일 때다. 19대 국회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 식물국회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이제 5개월. 식물국회에서 더 나아가 나라 망치는 괴물국회는 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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