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전 부랴부랴 설명회 개최…금융사 지배구조법…‘준비미흡’ 논란

이달부터 금융회사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됐다.(사진=연합뉴스)

금융회사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입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이 시행 초부터 논란을 낳고 있다. 법안에는 금융권 전역에 대해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담겼지만 기준이 모호하고 예시 규정도 없어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부터 지배구조법이 시행됨에 따라 금융계열사들은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금융당국이 금융사 대주주의 위법 사실을 고려해 주주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다.

최대주주가 최근 2년 내에 조세범 처벌법, 공정거래법 등 금융 관련 법령을 위반해 벌금형 이상을 받으면 시정명령을 받거나 10% 이상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최대 5년간 제한된다.

◆법은 이미 시행…금융사 맘 급한데 당국은 ‘느긋’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금융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법안 설명회를 열었다. 그러나 참석자들을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 채 끝나 혼란만 키웠다는 평이 나온다.

한 금융사 인사담당자는 “처음 제정된 법률이라 업계 관심이 뜨거웠다”며 “헌데 임원 자격요건, 임원 겸직, 이사회 구성요건,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성과보수체계,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 방대한 내용이 다뤄지다 보니 이해한 부분보다 이해 못한 부분이 더 많았다”고 전했다.

지배구조법은 10월 말까지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 집행된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당장 마음이 급한 건 금융사들이다. 올해 말 기준 적격성 심사 대상을 가려 내년 2월 말까지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펀드인 경우 등 실질적으로 주주를 찾기 어려운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같은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며 “기준이 모호해 상당수 금융사에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현대차·롯데,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 누구?

실제 지배구조법에 따라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하는 대기업 금융계열사는 모두 64곳이다. 이 가운데 심사 대상이 모호해 대상자 지정부터 난항이 예상되는 곳은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등이다.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의 경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분 20.75%를 보유해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19.34%)과 삼성문화재단(4.68%), 삼성생명공익재단(2.18%) 등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26.2%)이 많아 단순히 이 회장을 심사 대상자로 확정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그룹의 현대캐피탈의 최대주주는 지분율 56.47%를 보유한 현대자동차다. 현대차의 최대주주는 현대모비스, 현대모비스 최대주주는 기아자동차, 기아차의 최대주주는 다시 현대차로 순환출자 구조로 얽혀 있다. 개인 최대주주를 찾을 수 없는 것.

롯데그룹 금융계열사인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캐피탈의 최대주주는 호텔롯데이다. 호텔롯데의 대주주는 일본 롯데홀딩스, 일본 롯데홀딩스 대주주는 광윤사, 광윤사의 대주주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다. 그러나 금융계열사가 실질적으로 신동빈 회장의 영향권에 있다는 점에서 신 전 부회장이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구체적인 기준 없어…금융당국 뒤늦게 보완책 고심

이에 대해 금융위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다출자자 1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지 금융감독원과 함께 논의 중”이라며 “롯데캐피탈과 롯데카드 등 롯데그룹 금융계열사의 경우 지배구조가 복잡한 점을 감안해 그룹 출자구조 자료를 분석한 뒤 심사 대상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로부터 지배구조법 시행 업무를 위탁받은 금감원은 3개월간의 심사 기간을 거쳐 내년 5월께 첫 심사 결과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적격성 심사는 2년마다 이뤄진다.

한편 지배구조법 시행으로 임원 선임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특정 기업 등의 이익을 대변할 우려가 있으면 임원 자격을 얻을 수 없으며 사외이사의 직무충실성을 높이기 위해 겸직제한을 강화한다. 최대임기도 해당회사 6년, 계열사 합산 9년으로 제한한다.

또한 이사가 아니더라도 재무관리(CFO), 위험관리(CRO) 등 금융회사 주요업무를 집행할 권한을 갖는 임직원을 주요업무집행책임자로 정의하고 이사회에서 임면한다.

아울러 법안에는 자회사간 겸직, 자산규모별 감사, 임직원 성과보수 등 내용이 포함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 문제뿐 아니라 CRO 임명 방식과 겸직 가능 업무 등이 명확하지 않은 등 법안 자체가 매우 허술하다”며 “실무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사례를 적용한 기준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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