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기준 ‘설왕설래’…증권사 ‘법인 지급결제’ 혜택에 은행권 반발도 부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한 임종룡 금융위원장(가운데).

금융위원회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준비 중인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을 두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초대형 IB 육성 프로젝트를 주도할 금융당국이 시장의 반응을 의식, 가이드라인 공개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업계의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는 빠르면 이번 주 안에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발표한다. 당초 6월 발표예정이던 것을 7월 중으로 한차례 미룬데 이어 재차 연기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자기자본 기준을 5조원으로 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중소형 증권사들의 반발을 의식해 다시 고민에 빠진 것 아니겠느냐”며 “결과가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증권사들은 금융위 입만 쳐다보며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전했다.

◆3조·5조·7조원…자기자본별 혜택 세분화說 대두

금융위는 초대형 IB 육성방안에 ▲레버리지 규제 완화 ▲해외진출 시 자금조달 지원 ▲자기발행어음 허용 ▲종금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및 부동산 신탁 허용 ▲외국환업무 확대 ▲기업금융 전용 인터넷전문은행 신설 등 혜택을 담을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국내 증권사 대형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

증권업계는 정부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자기자본 기준을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우선 중소형 증권사와 금융투자협회는 초대형 IB 기준을 3조원으로 정해 되도록 많은 증권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토로한다. 반면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조원이 가장 적당하다’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몇몇 전문가들은 초대형 IB란 취지를 살리려면 자본기준이 10조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위는 초대형 IB 적용기준을 자기자본 5조원 이상의 증권사로 정하는 방침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었으나 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초대형 IB 육성방안 발표가 지난달에서 이달로 재차 연기되자 업계에서는 금융위가 아예3조·5조·7조·10조원 등 자기자본 기준별로 허용업무를 세분화하는 방안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법인 지급결제 허용…업무 권역 간 다툼 불가피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초대형 IB에 부여할 것으로 알려진 ‘법인 지급결제’ 허용 여부도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다.

증권사에 법인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되면 은행의 법인 자금이 증권사의 CMA 이동할 길이 열린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달 하계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사의 지급결제 관련 법안은 이미 9년 전 국회서 논의돼 통과된 사안인데 현재 개인에만 적용되고 법인에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때문에 증권사가 일반 기업에 가서 지급결제나 외환 송금, 자금 조달 등의 종합 서비스를 해주고자해도 계좌를 만들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법인 지급결제 업무 허용은 ‘사업영역 침해’일 뿐만 아니라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을 무너뜨려 ‘사금고화’ 우려를 키운다는 것.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증권업계 간 분열, 증권-은행업권 간 분열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고민도 크겠지만 민감한 사안일수록 중심을 잡고 추진력을 발휘해줘야 한다”며 “앞으로는 국내가 아닌 글로벌 시장이 금융사의 경쟁 무대가 되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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