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정치인들 심부름하는 게 주 업무예요. 어떨 땐 행사 진행해주고 비용 처리를 안 해줘서 골치아팠다니까. 암튼 반가워. 강 기자가 올해 처음 내방에 온 손님이야."
수년 전 서울에서 인사하고 몇 년 뒤 부산에서 다시 만난 한 출입처 관계자의 하소연으로 기억한다. 가족을 서울에 남겨두고 부산에 혼자 내려와 살고 있던 그는 자신의 회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밤새 술병을 기울였다.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겠다며 국내 주요 금융기관의 본사를 '접수'해온 부산이 이제 KDB산업은행도 가져갈 모양이다.
3일 국토교통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한국산업은행 이전공공기관 지정 고시문'을 공개했다. 이번 고시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한 행정부 차원의 절차는 끝났다. 이제 서울을 본점 소재지로 규정한 '한국산업은행법'의 국회 개정만 남았다.
당연히 산업은행 내부는 반대하는 분위기로 들끓고 있다. 산업은행은 1954년 설립 이래 거의 70년간 본사가 서울이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산업은행은 국내 기업의 금융 지원을 위해 세워진 국책은행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본사가 서울에 있다.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산업은행은 서울에 있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부산은 이런 당연한 이유를 애써 무시하며 같은 이유로 서울권에 있던 금융기관을 가져가는 중이다.
그동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거래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다소 정치적인 논리에 본사를 부산으로 옮겼다.
하지만 주요 금융기관의 본사 이전으로 확인되는 시너지는 찾기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서울과 부산으로 해당 기관의 주요 기능이 이원화되면서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세계 주요 도시들의 금융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수인 '국제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세계 128개 도시 중 11위를 기록했다. 서울시는 최근 수년간 GFCI 지수가 상승세라며 홍보하기 바빴지만 사실 이는 초라한 자기만족이다. 2015년만해도 서울시는 GFCI 지수에서 세계 6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GFCI 지수 순위는 2015년 9월 6위를 최고점으로 내려가기 시작해 2019년 3월에는 36위까지 떨어졌다. 예탁원과 캠코 등의 본사가 부산으로 이전한 시기와 겹친다.
이런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부산지역의 금융인프라에 큰 발전이 있다면 감안할 여지는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부산의 GFCI 지수도 떨어졌다. 금융경제연구소(FEI)는 "서울조차 금융중심지로서 입지를 공고히 다지지 못한 상황에서 부산까지 금융중심지로 중복 지정해 금융기관을 이전시켜 역량과 인프라가 분산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국제적인 금융중심지 중 부산처럼 금융기관을 강제로 이전해 성공한 사례가 없다. 뉴욕과 런던, 시카고,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등 금융중심지들은 상업과 공업의 발달에 따라 금융시장이 발달한 곳이다. 시중은행과 금융투자회사 등 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었다.
지금과 같은 강제적인 주요 금융기관 본사 이전은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든 도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직원들의 불만도 높을 수밖에 없다. 매일 수많은 직원들이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오가기 위해 비용을 쓰며 출장을 다녀야 하고, 일부 직원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원치 않던 주말부부로 지내야 한다.
이런 우려는 이미 앞서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한 다른 기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갈 경우 부산 남구 문현금융로 40에 짓고 있는 부산국제금융센터 내 일반용지와 주차장부지를 사용하게 될 예정이다. 부산국제금융센터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실제 가 본 그 자리는 딱히 금융스럽지 않았다.
고독한 섬같은 곳이다. 주변에는 주택가가 대부분이고 본사를 이전해 온 금융기관 외에는 다른 규모 있는 금융회사도 없다. 우리 금융시장의 불안한 미래가 아니길 바란다.
강현창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