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계열사의 유동성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를 총동원하고 있다. 그룹 내 계열사의 유상증자와 담보대출 등이 잇따라 진행되고 있고 해외 사업장의 매각도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는 설명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이 이달 초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본사 사옥을 담보로 3000억원대 대출을 받았다. 최근 부동산 시장 자금 상황 악화에 대응하고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롯데건설은 대출금을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의 차환에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이 담보로 잡은 것은 잠원동 본사 사옥이다. 대출은 일본 미즈호은행이 해준다. 근저당권 채권최고액은 3613억원 규모다.
이에 앞서 롯데건설의 최대주주인 롯데케미칼도 1조105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롯데케미칼 측은 이 가운데 6050억원을 배터리 소재 기업 일진머티리얼즈의 인수 대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50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자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쓰려던 자금 일부를 롯데건설에 우선 지원하고 빈 곳을 채우기 위해 유상증자를 하는 모양새다.
롯데그룹의 롯데건설 지원은 또 있다. 지난 10월 20일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에 5000억원의 자금을 단기간 금전대여해줬으며, 롯데케미칼의 자회사 롯데정밀화학도 지난 11월 9일 3000억원을 롯데건설에 빌려줬다.
또 롯데건설은 롯데홈쇼핑에서도 1000억원을 빌렸으며 하나은행에서 2000억원,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서 1500억원 등 총 3500억원을 차입하기로 의결했다. 여기에는 롯데물산이 자금보충 약정 지원에 나선다.
이처럼 롯데 계열사가 전방위적으로 롯데건설 지원에 나서는 가운데 하석주 롯데건설 사장은 유동성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21일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보는 롯데케미칼 주주들은 불만이 크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3분기 '어닝 쇼크'를 겪으면서도 롯데건설의 지원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일으켜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롯데건설이 계열사를 통해 모은 자금은 1조4500억원 규모다. 이 중 상당분이 롯데케미칼의 지원이다. 이에 각 증권사도 롯데케미칼의 목표주가를 내려잡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유동성 위기가 롯데건설과 롯데케미칼에만 국한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18일 호텔롯데는 보유 중인 롯데칠성음료의 보통주 7만3450주(2.72%)를 시간 외 매매 방식으로 전량 매각했다. 호텔롯데 측은 매각 이유를 '현금흐름 개선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호텔롯데는 특히 손자회사 뉴욕팰리스호텔의 실적 부진 영향으로 손실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호텔롯데는 신동빈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향후 국내 증시 상장이 예고된 곳이다. 롯데건설 43.07%, 롯데물산 32.83%, 롯데알미늄 38.23%, 롯데렌탈 37.8% 등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다수 보유한 사실상 중간 지주사다.
롯데 그룹 내의 해외 사업장 정리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 9월 중국의 '롯데오더리음료유한공사'를 매각했다. 롯데오더리음료유한공사는 2005년 롯데칠성이 인수한 중국 음료회사로 총 900억원이 넘는 투자가 이뤄졌지만 매년 적자를 기록하던 곳이다. 롯데칠성의 자회사였다가 2017년 롯데지주로 편입했다. 지난 상반기 기준 자산 219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롯데그룹이 올해 들어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는 데 대해 시장은 불안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롯데케미칼 등 주요 롯데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향후 6개월~1년간 가시적인 실적 개선이나 업황 개선 추세가 나타나지 않으면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시장의 우려에 대해 롯데 측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건설 지원에 발 벗고 나선 롯데케미칼의 김연섭 ESG 본부장은 지난 21일 유상증자 콘퍼런스콜에서 "롯데건설이 최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인해 일시적인 자금 경색을 겪었다"면서 "리스크가 상당한 수준으로 해소됐고 긴급한 상황은 지난 것으로 알고 있으며, 더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이 실적 바닥을 지났어도 영업환경이나 재무 불확실성이 빠르게 개선되기는 어렵다"며 "사이클 반등과 신사업 성과 가시화까지 길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현창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