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유럽연합(EU)이 24일(현지시간) 새 자유무역협정(FTA) 등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미래관계 설정을 위한 협상을 타결지었다.
이로써 양측은 완전한 결별을 하게 됐다. 영국이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4년 반 만이다.
영국은 지난 1월 31일 브렉시트를 공식 단행했다. 다만 올해 말까지는 이행기로 EU 회원국과 사실상 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영국과 EU는 지난 3월부터 이행기 이후 관계 설정을 위한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이견을 다투며 '노딜(no deal) 브렉시트' 우려를 자아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둘러싼 위기감, 특히 영국에서 최근 문제되고 있는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가 협상 타결의 기폭제가 됐다. 팬데믹 사태로 이미 위태로운 경제에 노딜 브렉시트라는 충격을 더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협상 타결을 재촉했다.
양측은 연내 의회 비준 등 남은 절차를 마쳐 새해 경제활동의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제로 관세, 제로 쿼터'
이번 협상의 핵심은 새 FTA로 통상관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제로(0) 관세, 제로 쿼터(할당량)'로 요약된다. 양측은 큰 틀에서 교역품 대부분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출입 쿼터를 부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영국은 이전과 사실상 마찬가지로 EU 단일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수출업계가 우려하던 관세 부활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하게 된 것이다.
다만 특혜관세 대상 품목의 원산지가 제한되는 등 규제장벽은 다소 높아진다. 영국과 EU 이외 국가의 원재료 비중이 큰 제품에는 내년 1월부터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 원산지 증명 등을 위한 통관절차가 까다로워지는 셈이다.
◇'이동의 자유' 끝
영국과 EU 간 '이동의 자유'는 사실상 끝난다. 이주, 취업 등이 제한되는 셈이다. 쉽게 말해 영국에서 EU 시민, EU 역내에서 영국인은 각각 다른 외국인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영국인이 EU 국가를 방문하려면 여권 유효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EU 역내에서 90일 넘게 머물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차량을 운전하려면 국제면허증이 필요하다. 반려견을 동반하려면 백신접종을 해야 하고 건강증명을 받아야 한다. 몇 주는 걸리는 절차다.
◇어업권 5년 반 이행기
이번 협상에서 끝까지 문제가 된 이슈 가운데 하나는 영국 해역 내 EU 어선의 어업권에 관한 것이었다.
양측은 우선 5년 반 동안 이행기를 갖기로 합의했다. 영국이 주장하던 기간보다 길지만, EU가 주장한 10년보다 짧은 타협안이다. 이 기간 동안 EU 어선은 계속 영국 해역에서 조업할 수 있다. 이행기가 지나면 매년 어업 쿼터를 정하기로 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행기가 지나면 영국 해역 내 자국 어선들의 몫이 현재 절반에서 3분의 2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애매한 '경쟁의 룰'
이른바 '공정한 경쟁의 장'(level playing field)을 마련하기 위한 경쟁의 룰도 논란이 됐다. EU의 주장대로 양측은 상대의 경쟁을 저해하는 보조금 정책 등을 피하고 환경·사회·노동·세제 등과 관련해 투명한 기준을 지지하기로 했다.
존슨 총리는 다만 "영국과 EU는 동등한 주권국으로서 행동할 것"이라며 어느 쪽이든 상대의 경쟁을 저해하면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선 안도...파운드화 강세
협상 타결 소식에 영국 파운드화가 강세를 띠는 등 시장에서는 '최악은 피했다'며 안도했다.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한때 2년 반 만에 최고치에 가깝게 올랐다.
시장 전문가들도 이번 합의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에 따르면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들은 "이 합의가 경제 붕괴 우려를 누그러뜨리고 (영국과 EU의) 건설적인 미래 경제·정치 관계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잔나 스트리터 하그리브스랜스다운 선임 투자·시장 애널리스트는 영국이 이번 합의로 올해 심각하게 위축된 경제의 회복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이날 낸 리서치 노트에서 이번 합의가 영국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투자를 자극할 것으로 봤다. 영란은행(BOE)은 영국이 EU와 미래관계협상을 타결지어도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르는 비용을 치를 것으로 봤는데, 스트리터는 이번 합의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서두른 막판 합의' 불안도
다른 한편에서는 우려도 제기된다.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합의에 따른 영국과 EU의 새 관계가 기존 관계보다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서둘러 이룬 막판 합의가 악감정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합의에는 경쟁의 룰, 통관절차 간소화 등 애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이 여럿 포함됐다.
또한 영국은 미국과의 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지렛대로 내년 이후의 성장 전략을 마련할 태세인데, 새 FTA 협상이 순항할지 미지수다.
영국 예산책임국(OBR)은 올해 성장률을 -11.3%로 전망하고 있다. 변종 바이러스 확산으로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OBR은 EU와의 FTA 합의가 있어도 영국의 GDP가 장기적으로 4% 줄 것으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