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빠바이반 백화점에 입점한 이랜드 액세서리 매장[사진=연합뉴스]
상하이 빠바이반 백화점에 입점한 이랜드 액세서리 매장[사진=연합뉴스]

패션을 주축으로 성장해온 이랜드그룹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사업 다각화로 인수했던 이종 사업은 부메랑이 돼 돌아왔고, 본업인 패션사업 마저 장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영업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결국 그룹의 핵심이던 여성복 사업부를 팔기로 했다. 

◇여성복 떼고 ‘SPA‧스포츠’에 집중 

이랜드에 따르면 이랜드는 그룹 내 패션 법인을 ▲글로벌 SPA ▲스포츠 ▲여성복 등 3대 사업부로 재편하고 이 중 여성복 사업부는 매각하기로 했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SPA브랜드의 글로벌 확장과 스포츠 사업에 더 집중한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매각하는 여성복 사업부는 이랜드월드의 미쏘, 로엠, 에블린, 클라비스, 더블유나인(W9), 이앤씨월드의 이앤씨(EnC) 등 6개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는 영캐주얼부터 시니어까지 전 연령을 아우르며 전국 500여개 오프라인 매장을 보유 중이다. 연 매출은 3000억원, EBITDA (이자 및 법인세차감전 영업이익) 400억원 수준이다.

이랜드는 캐시카우인 여성복 사업부문이 매각 되더라도 자사 유통 매장 및 온라인 플랫폼과 지속적인 협력관계로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여성복 사업부문이 매각을 통한 투자 유치를 통해 콘텐츠와 운영 측면에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기존 온∙오프라인 플랫폼에서 성과를 내며 경쟁력이 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이번 패션 포트폴리오 재편은 SPA, 스포츠, 여성복이라는 각 사업부 특성에 맞는 투자와 운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면서, "특히 여성복 사업부는 국내 최고의 여성패션 전문 기업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외부의 전략적 투자자나 재무적 투자자에게 매각 후 전략적 제휴를 하는 방안까지도 고려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이와 관련해 삼성증권을 재무자문사로 선정했다. 이번주부터 재무적 투자자(FI)와 전략적 투자자(SI) 등 잠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투자설명서(IM)을 배포하고, 다음달 말 까지 투자의향서를 접수 받을 계획이다. 

로엠[사진=합뉴스]
로엠[사진=합뉴스]

◇패션 DNA 잃어가는 이랜드… 빚으로 장사 

업계에선 이랜드의 이러한 행보가 ‘자체 DNA’를 잃어가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40년 전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이 이화여대 앞에서 작은 옷가게로 창업한 게 이랜드그룹의 시초다. 패션업으로 자리 잡은 이랜드는 이후 빚으로 사업을 다각화했고, 큰 위기를 맞았다. 

이랜드는 2003년 법정관리 중이던 뉴코아를 6300억원에 사들인 것을 시작으로 ▲외식▲건설, 가구, 생활용품 ▲호텔, 리조트 ▲의류 ▲테마파크 등 50여건의 인수합병(M&A)에 성공했다. 업계에선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이후 이랜드는 패션과 유통을 주축으로 연 매출 9조4000억원의 그룹으로 몸집을 키웠다. 인수 자금의 대부분은 차입으로 조달했다. 그 결과 2013년 그룹 부채비율은 399%까지 치솟았다. 

설상가상 2015년 말 그룹 지주사격인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차입금을 조기 상환하라는 압박이 가해지자 유동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이랜드는 빚으로 사들인 사업들을 다시 하나하나 내다 팔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인기를 끌던 캐주얼 브랜드 티니위니를 2016년 3월 8700억원에 매각했고 평촌 NC백화점은 1380억원에 팔았다. 홈&리빙 사업인 모던하우스는 7000억원에 엘칸토 405억원, 켄싱턴제주호텔 1280억원, 케이스위스 3030억원 등 줄줄이 되파는데 성공했다. 

케이스위스를 중국 엑스텝에 3000억원에 넘기는 한편, 티니위니와 모던하우스도 각각 8700억원, 7000억원에 매각했다. 비수익 브랜드와 매장 철수도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이랜드리테일, 이랜드월드 등 이랜드그룹 내 계열사 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차입금 만기구조를 장기로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힘입어 그룹 부채비율은 2017년 200%, 2018년 170%, 2019년 160%로 떨어졌다. 

◇매장 중심 영업망… 고정비 부담 때문에 

이후 자산매각을 중단하면서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지만 올 한해 코로나19 여파로 다시 위기 모드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 경기 침체와 패션불황이 더해지면서 패션업·유통업·외식업 등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 영업실적이 급격히 나빠졌다. 코로나 단계 격상에 따른 매장 휴업도 한 몫 했다. 

결국 이랜드가 빼 든 카드가 그룹의 시초나 다름없는 여성복 매각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성복 브랜드들이 매장을 중심으로 한 영업망이 많다보니 고정비 부담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스파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에 집중하면서 온라인 매출 효과까지 함께 노리겠다는 전략 방향은 맞다”면서도 “지금의 이랜드를 만들어 준 이랜드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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