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에 110억 달러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놨다.

EU가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에 과도한 보조금 혜택을 주는 바람에 미국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논리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EU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절차를 시작했다니 무역전쟁의 전초전이 시작된 걸로 봐도 좋겠다.

트럼프 쇼크가 있던 그날 중국은 EU에 '내년까지 투자보호협정 체결'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2013년 협상이 시작된 이후 5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사안이다. 중국과 EU 간의 정상회의가 끝난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 전격 삽입됐는데, EU 입장에서는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할 터다.

유럽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고 수익을 안전하게 회수하는 걸 보장하겠다는 게 이 협정의 골자다.

중국이 통 큰 양보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과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반대쪽에 또 다른 적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맞서기 위한 우군 확보가 절실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다.

EU도 장단을 맞췄다.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할 뿐 아니라 트럼트 대통령이 걷어찬 파리협정과 이란 핵 합의 등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입장과 같다.

중국과 EU는 트럼프 대통령이 원치 않는 WTO 개혁을 추진하고, 미국 편인 IMF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쯤 되면 한편인 것 같은데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EU는 이번 공동성명에서 인권 문제를 언급했다.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중국을 겨냥한 게 분명하다.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리커창 중국 총리는 꽤나 불편했을 것이다.

중국 내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미국과 EU가 공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얀마 사태나 우크라이나 이슈에 관해서도 EU의 입장은 중국보다 미국 쪽에 가깝다.

EU 구성원들이 중국에 대해 모두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어젠다인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다.

프랑스와 독일 등은 일대일로에 대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데 반해 이탈리아는 이번 시진핑의 유럽 순방길에 덜컥 MOU를 맺어 줬다. 브렉시트로 골머리를 앓는 영국도 일대일로를 결사반대하는 건 아니다.

미국과 EU, EU와 중국, 중국과 미국 간에 얽히고설킨 관계가 천변만화한다. 심지어 EU 내 역학관계도 수시로 바뀐다.

이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할 수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 진전, 한국의 경제·무역 구조 변화와 직결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 변수까지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고차방정식의 차수가 높아질수록 두통도 심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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