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법정 근로시간 68→52시간으로 단축
‘워라밸’은 좋지만..“중소기업 범법자 만드는 것”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가 금번 추진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선진국형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Work and Life의 준말)’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근로시간이 많은 나라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혼란스럽다며 한숨부터 내쉬고 있다. 추가인력을 구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은 당장 아우성이다. 집중 근무직과 저임금자들 사이에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 근로기준법 개정안 환노위 통과
지난 27일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르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환노위는 1주일을 토·일요일을 포함한 7일로 명시하고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한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2013년 국회에서 관련 논의에 착수한 지 5년 만에 이뤄진 타결이다.
다만 산업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 규모별로 시행 시기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오는 7월 1일부터 주당 근로시간 52시간을 지켜야 한다. 50∼299인 사업장과 5∼49인 사업장은 각각 2020년 1월 1일, 2021년 7월 1일부터 적용한다.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노사 합의에 따라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추가 허용하고 탄력근로시간제도의 확대 적용도 논의한다는 부칙을 달았다.
연소근로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1주 46시간에서 40시간으로 축소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휴일근무수당 지급과 관련해선 현행 기준을 유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8시간 이내 휴일근무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0%를, 8시간을 넘는 휴일근무에 대해선 200%의 수당을 받는다. 또 공무원·공공기관 직원에게만 적용되던 법정 공휴일 유급휴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 “최저임금 인상보다 여파 커”..중소기업 ‘울상’
대기업은 ‘주 52시간’ 도입의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정치권에서 본격 시작된 뒤 상당 기간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신세계 등 주요 대기업은 이미 근로시간 단축 도입에 대비해왔다. 신세계그룹은 주 52시간보다 더 나아가 주 35시간제를 올해 1월부터 도입했다. 삼성전자도 올해부터 주 52시간 근무로 바꿨다.
반면 중소기업은 상황이 크게 다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이 주 최장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 후 기존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연간 12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71%(8조600억 원)는 300인 미만 중소기업 부담이다. 중소기업계는 개정안에 공휴일 유급화가 포함된 것도 부담이라고 토로한다. 구인난에 시달리는 영세 중소기업은 인력 확보도 걱정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맞춰 인력을 늘리려고 해도 인력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2∼3차 벤더로부터 납품을 받아 대기업에 납품하는 1차 벤더 기업인 A씨는 “최저임금 인상보다도 여파가 훨씬 크다. 우선 임금이 워낙 낮다보니 근로자들이 원하질 않는다”면서 “일부 라인이 24시간 돌아가고 있는데 3부제를 편성하고 8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맞춰야 하니 사람을 더 써야 하는데 문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그나마 외국인 근로자도 쿼터(채용한도)에 걸리니 더 이상 쓰지 못한다. 앞으로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올 것 같다”고 우려했다.
◇ 집중 근무직·저임금자 불만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업종에서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자업계 관계자 B씨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올 초부터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그래도 초과 근무 없이 여름철 에어컨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물분야 업체 대표 C씨는 “주물업계는 전기로를 24시간 돌려야 하는데 주 52시간으로 하면 전혀 할 수가 없다”면서 “생산은 해야 하고 주 52시간만 갖고는 안되니 근로자들에게 야근으로 더 하자고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결국 중소기업을 다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간외수당에 의존해온 저임금자도 시름이 커졌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는 탓이다. 국내 임금 체계는 대부분 기본급이 낮고 연장·초과근로 등 각종 수당이 많다. 대형마트 계산원 D씨는 “저임금 근로자는 어쩔 수 없이 쉬는 것보다 일을 더 하고 돈으로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올해부터 운전기사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 맞춰봤다. 그러자 한때 5000만 원이던 기사 연봉이 3600만 원으로 줄어들어 몰래 ‘투잡’을 알아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임금 중 초과급여는 총액 대비 약 30%에 이른다. 임금체계가 합리적으로 개편되지 않는다면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소득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의 세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 노동계 전문가는 “2013년 정년연장을 법으로 의무화했을 때도 임금피크제 등 보완책 마련에 소홀한 탓에 산업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졌고 올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후폭풍을 몰고 왔다”며 “근로시간 단축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