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신규계좌 개설 망설여..우왕좌왕 행보에 투자자들 불만 폭주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래실명제가 시행되면 신규계좌 발급이 가능해지지만 은행권은 조심스러운 기색이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와 관련해 은행에 자율권을 주면서도 법적 책임은 철저히 물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은 탓이다.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확실한 지침 없는 정부와 은행권을 바라보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엄격한 절차를 거쳐 실명 확인이 된 사람들에게만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해주는 거래실명제가 오는 30일을 기해 시행된다. 신한·NH농협·IBK기업·KB국민·KEB하나·광주은행 등 총 6개 은행은 이날부터 실명확인 입출금계정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실명확인을 거부하는 거래소는 은행 거래가 거절되고 하루 1000만원 이상 가상화폐 거래는 의심거래로 분류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된다.

하지만 현재 6개 은행 모두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전환 이후 신규계좌 발급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거래소와 신규계약이든, 신규 투자자 유치든 은행 자율로 할 수 있지만 법적 문제가 생기면 철저히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것이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3일 ‘자금세탁방지 가이드 라인’을 내놓으면서 “(가이드를) 지킬 자신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금융 영역인 데다가 미래 예측도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명확한 지침을 주지 않고 “자율로 하라”며 책임을 떠넘겨 버리자 은행들은 혼돈에 빠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아 리스크가 크다”면서 “은행에 부여된 거래소의 자금세탁을 방지에 대한 책임이 무거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상화폐 계좌 실명 시스템을 갖춘 6개 은행 가운데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있는 신한·NH농협·IBK기업 등 3곳은 실명제가 시행돼도 당장 신규 계좌는 개설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일단 기존 고객에게만 실명계좌를 발급하고 신규 계좌 개설은 유보하겠다는 설명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거래했던 고객의 경우 실명제 전환을 완료할 것이다. 하지만 신규계좌 발급 진행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KB국민·KEB하나·광주은행 등의 경우 실명제 시스템은 구축했지만 가상화폐 거래소와 계약은 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 또한 30일부터 신규계좌 발급은 어려울 전망이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신규 계좌를 트려면 거래소와 계약 체결부터 해야 하는데 진행되고 있는 게 없다”며 “거래소 계약과 신규 계좌 제공 여부 등은 모두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금융당국과 은행들은 실명제 시행과 함께 신규 계좌 개설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지만 결국 유야무야된 것이다.

가상화폐 실명제 도입을 목전에 두고도 시장이 오락가락 행보를 이어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역대급 우왕좌왕이다. 도대체 한 달 동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투자를 고민 중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갈피를 못 잡겠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금감원 정식 공문도 없이 은행과 카드사한테 알아서 눈치보라는 식이다. 법도 없고 절차도 없다. 자율규제 외치며 니들이 알아서 제재해라, 우리는 긴말 안 하겠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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