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상생일까? 한국 경제는 일부 대기업과 일부 업종이 주도하는 기형적 성장에 직면하고 있다. 소수의 이들 기업에 한국 경제의 명운이 달렸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이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양극화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독버섯이다. 이 때문에 포용적 성장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경제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새 정부 'J노믹스'가 내건 가치의 맨 앞단이 상생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이다. 상생의 국가·사회·경제적 가치가 무엇일까.

본지는 창간2주년 특별기획 '상생지도'를 통해서 그 가치를 그려보고자 한다.[편집자] 

◇ 도요타, 성과공유제로 협력업체와 이윤 나눠

지난 200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도요타의 렉서스 차량에 타고 가던 일가족 4명이 브레이크 고장으로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도요타는 이 사건의 촉발로 2010년 2월까지 미국, 유럽, 중국 등 전 세계에서 1200만대 이상을 리콜했다. 이는 2009년 일본 내 판매 대수(1375만대)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당시 도요타는 리콜 비용으로 24억 달러를 치러야 했으며 소송을 낸 소비자들에게 16억 달러를 배상했다. 미국에서의 급발진 리콜로 자동차 업계로서는 최대 규모인 12억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그동안 유지해온 ‘고품질 명차’라는 이미지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도요타는 더 이상 회생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실제 2010년 1월 도요타의 미국 내 신차 판매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8% 감소했다. 에이비스 버젯 등 렌터카 업체가 안전상의 이유로 도요타 차량 2만대 가량의 대여를 중지했고, 엔터프라이즈홀딩 등도 도요타 중고차 판매를 중단했다.

하지만 한때 폐업 위기까지 몰렸던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 사태를 극복하고 세계 1위 기업으로 우뚝 서며 완벽하게 재기했다. 도요타는 2014년 전 세계에 1023만대의 차량을 판매하는 등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2012년부터 3년 연속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도요타가 폐업 위기에서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우뚝 선 배경에는 위기 속에서도 지켜진 ‘노사화합’이 있었다. 도요타는 과거 1950년 인력감축과 파업 등으로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당시 노사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75일간이나 파업을 벌였다. 그러나 1962년 노사화합 선언을 한 이후 54년간 ‘무파업’을 유지하고 있다.

협력업체와의 상생 제도 및 프로그램을 내세운 점도 도요타 재도약의 큰 발판이 됐다. 도요타의 내부 제조비율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1차 부품업체와 지역 내 소재·부품·조립 등의 기업들로 구성된 ‘분업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한다.

도요타는 성과공유제를 1959년 처음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과공유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원가 절감, 품질 개선, 생산성 향상 등을 추진하고, 성과가 나면 이를 사전에 계약한 대로 나누는 제도다.

아울러 도요타는 협력업체 대상 기술자문단을 운영하고, 기술적 측면에서 유망한 협력업체에 대해 장기저리로 자금을 지원한다. 협력업체가 금융대출을 받을 경우 도요타가 보증을 해줌으로써 유리한 조건의 자금조달을 측면 제공한다. 도요타는 어떤 상황에서도 협력업체 대금 3개월분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 필립스, ‘지속가능경영’으로 상생 도모

글로벌 헬스케어 및 전자기업으로 잘 알려진 로열 필립스는 세계 최초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한 기업이다. 2003년부터 전세계 5만여개 협력업체의 지속가능성을 지원 및 관리하는 것을 상생협력의 기본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협력업체에게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제출하록 한다.

여기에는 재무적 안정성 여부, 노조가입권 보장 여부, 아동노동 금지 여부, 인종/성/종교 등에 따른 차별 금지 여부, 환경과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 다양한 경영사항이 포함돼 있다. 만일 협력업체가 필립스가 제시한 지속가능경영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거래를 할 수 없다.

필립스를 일으켰다고 일컬어지는 제라드 클라이스터리가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도 필립스의 상생경영은 빛이 났다고 회자된다. 당시 필립스는 지나치게 커다란 몸집을 갖고 있어서 기동성과 효율성이 약했다.

이에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는 성공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된 사업 부문을 팔았다. 휴대전화와 오디오, 팩스 사업을 외부에 매각하고 TV, CD플레이어, VCR 제조를 타국 회사로 아웃소싱했다. ‘회사의 심장’이라고 여겨지던 반도체 분야까지 매각했다.

라이프 스타일기업으로서 소비자에게 웰빙 라이프를 선사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 결과 마침내 필립스는 지난 2010년 3조9000억 원의 적자를 2조3000억원의 순익으로 바꿔냈다. 기복이 심했던 회사는 이후에도 안정세를 지속했다.

단순히 사업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필립스를 일으켜 세웠다면 필립스가 상생경영 기업으로 불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일례로 2001년 휴대전화 사업을 정리하면서 프랑스 르망에 위치한 공장을 폐쇄할 당시 회사는 폐쇄 결정 초기부터 르망 주정부와 논의하며 ‘단계별 공장 폐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력 업체와 연계해 해고 직원의 65%에게 일자리를 알선했다. 다른 기업이 르망에 투자하도록 해 일자리 1100개를 만들어준 뒤 사업을 정리했다. 미국 뉴멕시코 반도체 공장과 오스트리아 빈 VCR 공장을 정리할 때도 같은 순서를 밟았다. 필립스에게 ‘떠난 자리마저 아름다운 기업’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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