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 수수료 인하 칼바람에 내년 사업계획 재조정

카드업계가 좌불안석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부터 카드 수수료율을 대폭 낮추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는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재조정하는 등 전략수립에 부산한 모습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당정협의 결과 내년 1월 말부터 영세·중소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0.7%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일반가맹점도 0.3%포인트 낮춘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카드업계의 가맹점수수료는 약 6700억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상반기 8개 전업 카드사의 당기순이익(1조877억원)의 절반을 넘어서는 순익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카드사들은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반영해 내년 사업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에 따른 대책 마련을 위해 긴급 TF를 구성 중"이라며 "계획 중이던 사업안은 보류하고 현재 진행 중인 사업만 계속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밴(VAN) 수수료 정률제 추진

수수료 인하를 앞두고 카드사가 당장 손을 댈 수 있는 것은 밴 수수료다. 카드사들은 카드 결제 건당 지급하는 밴 수수료(평균 118원)를 금액에 따라 일정 비율로 지급하는 정률제로 변경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현재 카드업계는 밴 업체에 주는 수수료를 최대 30%까지 깎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밴 수수료는 카드사가 밴사에 내는 것이다. 밴사는 카드 조회·승인, 매출 관련 전표 매입을 대행한다. 나이스정보통신, 한국정보통신, 한국사이버결제 등이 대표적인 밴 업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건당 지불하는 밴 수수료를 일정한 금액으로 범위를 정해서 지불하게 되면 밴 수수료 부담은 다소 줄어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표 매입 과정이 생략돼 밴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무서명 거래도 확대할 방침이다. 무서명 거래는 별다른 절차 없이 카드사가 가맹점에 통지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무서명 거래는 카드 결제 시 서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카드사가 밴사로부터 따로 전표 매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현행 감독규정에는 5만원 이하까지만 무서명 거래를 실시하고 있는데 카드업계는 이를 10만원까지 확대해달라고 건의하고 있다.

◇ 신규채용 줄여..희망퇴직 나선다는 얘기도

카드업계는 신규채용 축소 희망퇴직 등 긴축 경영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줄어든 수수료 수익을 메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인력 채용은 더 힘들어질 것이란 예상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회사 입장에서 가장 비용 절감 효과가 큰 것은 인력 감축"이라면서 "기존 인력에 대한 퇴직은 물론 신규채용 규모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카드사 고위 임원 역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약관상 정해진 것이어서 줄일 수 없다 보니 자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매년 40명 안팎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사실 이마저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카드사들이 올 연말 희망퇴직에 나설 거란 얘기도 업계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형 카드사 1곳이 연말에 희망퇴직에 나선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며 "규모가 작은 카드사는 시장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 부가서비스 점진적 축소 예상

수익 악화는 고객에게 주던 할인 및 포인트 적립 서비스 축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우선적으로 자구노력을 통해 수수료율 인하에 따른 충격완화에 나서겠지만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서비스를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2012년 카드 수수료율 인하 당시 카드사들은 각종 부가혜택을 크게 줄인 전례가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마다 수수료 손실분이 다르겠지만, 어느 한 영역에서 손실 전부를 메울 수 없기 때문에 영업비, 인건비, 마케팅비 등 각 분야의 비용을 절감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실을 메우기 위해 결국 고객에게 주는 포인트 적립 등 혜택을 중장기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특히 신규 고객들과 만기가 끝난 고객들은 자신들이 받았던 혜택을 더는 못 받을 수 있다"며 "새로운 부수 업무 수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당분간 카드사가 시행하는 이벤트나 마케팅 등은 위축되고, 혜택이 풍부한 신규 카드 출시도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행 5년인 카드사의 부가서비스 의무유지 기간도 신규서비스의 경우 단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위도 카드사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현재 5년인 부가서비스 의무유지 기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해 카드사가 제공하는 혜택의 축소가 소비자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 대부업 고객 유치에 집중

카드사들이 고금리 현금서비스, 카드론 등 대부업에 더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사의 주 수익원인 수수료 수입이 줄어든다면 부가 수익원을 통해 보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년에는 카드론 등에서 고객 유치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카드사들의 영업수익 부분에서 카드 이자수익의 증가보다 카드론·대출 등에 따른 수익 증가현상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삼성카드, KB국민카드, 신한카드 등을 포함해 주요 5개사의 카드사의 신용판매 영업실적을 2014년 상반기 대비 2015년 상반기 비교해 본 결과 적게는 1%에서 크게는 5%의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같은 기간 카드론·대출 등에 따른 영업수익 실적은 20%대에서 많게는 90%대에 이르는 증가추이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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