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소득 공백 메우는 수요 증가…보험사 재무 영향은 '미세 조정' 수준
사망보험금을 생전에 나눠 받을 수 있는 유동화 제도가 시행된 지 보름여 만에 신청 건수가 600건을 넘어서며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작 보험사들은 재무건전성과 부채관리 측면에서 제도 영향이 크지 않다는 평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제도 확산 과정에서 건전성 지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달리 실제 재원 구조가 해약환급금에 기반해 있어 현금유출·지급여력비율(RBC) 부담은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20일 생명보험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삼성생명, 교보생명, 한화생명, 신한라이프, KB라이프 등 5개 생보사에 총 605건의 유동화 신청이 접수됐다. 1건당 연평균 지급액은 477만원, 월평균으로는 약 39만8000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신청자의 평균 연령은 65.6세이며 유동화 비율은 89.2%, 지급기간은 평균 7.9년이었다. 국민연금 월평균 수령액이 약 68만원에 그치는 점을 고려하면 노후 소득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수요가 초기 확산을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일부에서는 유동화 제도가 보험사 부채를 낮춰 재무 지표를 개선시키는 효과만 크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자산·부채 관리 측면에서 제도 영향이 과장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나중에 지급해야 할 사망보험금을 일정 기간 분할로 앞당겨 지급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현금유출이나 건전성 부담이 특별히 커지지 않는다"며 "고객에게 필요한 시점에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손익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실제 교보생명은 최근 월평균 약 100건 정도의 신청이 접수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건전성 지표에 변화는 없다는 입장이다.
신한라이프 역시 유동화 제도 확대로 인한 현금 유동성 리스크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신한라이프 관계자는 "65세 이상, 일정 납입기간 충족 등 대상 계약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전체 보험부채 대비 비중이 매우 낮다"며 "유동화가 급증하더라도 RBC나 현금유출을 흔들 정도의 충격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상 계약 규모는 과거 TF 단계에서 이미 산출된 범위 내에 있다"고 덧붙였다.
농협생명은 유동화 재원이 기존 주계약의 해약환급금에서 나간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해약환급금을 기반으로 지급하는 구조라 많이 신청되더라도 부채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금융당국이 12월 말까지 전산 준비를 완료하도록 지시해 내년에는 대부분 생보사가 제도를 오픈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화 제도는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들이 보험부채를 시가 평가로 관리하면서 현금흐름 변동성을 낮추고 부채 프로파일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으로도 거론돼 왔다. 유동화가 진행되면 미래 지급해야 할 사망보험금이 줄어드는 만큼 부채 총량이 조정돼 일부 생보사에는 오히려 자본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다만 지급 기간과 분할 방식 구조상 손익 개선 효과가 단기간에 크게 발생하지는 않는 만큼 건전성 변화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유동화 제도가 고령층의 노후 소득 보완 기능을 제공하는 동시에 보험사 부채 관리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며 다만 소비자가 해약환급금 기반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불완전판매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생보협회는 제도 시행 이후 소비자 안내 강화를 요청받아 자필서명 의무화, 비교안내서 제공, 취소권(3개월) 부여 등 보호장치를 정비하고 있다. 비대면 신청 도입도 검토 중이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