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만 계약 조건 그대로 유지…예보 100% 출자 가교보험사 출범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MG손해보험이 청산 위기에 몰렸다가 지난 7월 재매각 절차에 다시 돌입하면서 관련 당사자들 사이에 불안과 기대가 엇갈리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124만여 명의 보험계약자를 보유한 MG손보의 운명은 결국 '청산'이 아닌 '계약 이전'을 통해 정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일 정례회의에서 MG손해보험에 대한 계약이전 결정·영업정지 처분을 의결했고 4일부터 MG손보의 모든 영업은 전면 정지됐다.

이에 따라 총 124만 건의 보험계약은 신설 가교보험사인 '예별손해보험'으로 즉시 이전됐다. 예별손보는 예금보험공사가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로 계약조건과 보장 내용은 변경 없이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후순위채권 등 비보험성 부채는 이전 대상에서 제외됐다.

MG손보의 불안은 올해 3월 메리츠화재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반납하면서 본격화됐다.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12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3개월간 인수 절차를 진행했으나 실사 과정에서 MG손보 노동조합의 반발에 부딪혔다. 메리츠화재는 직원 10% 고용 보장과 고용 승계가 어려운 인력에 대해 총 250억원 규모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조건까지 제시한 반면, 노조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인수 절차가 최종 무산됐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는 즉각 입장을 내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MG손보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한 지 3년이 지난 상황에서 경영환경이 악화된 점을 들어 정리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내놨다.

MG손보의 재무 상황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20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2023년 3분기 기준 자본총계는 –184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보험회사의 재무건전성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이다. 같은 기간 43.37%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1.13%포인트나 급락했다. 이는 금융당국 권고 기준인 150%는 물론, 보험감독규정상 최소 기준인 100%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이처럼 심각한 재무건전성 악화는 인수 희망자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해왔으며 결국 다섯 차례에 걸친 매각 실패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보험계약자들의 불안은 커졌다. 예금자보호법상 최대 5000만원까지 보험금이 보장되지만 이를 초과하는 계약자가 1만1470명에 달하며 해당 계약금액만 약 1700억원에 이른다. 청산이 현실화될 경우 이들 계약자는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되고 장기간 보험을 유지해 온 가입자들은 기존 혜택을 잃게 된다. 특히 유병자나 고령자의 경우 다른 보험으로 갈아타기도 어렵고 재가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기존 조건을 유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가입자들의 집단적 대응으로 이어졌다. 국회 전자청원 사이트에는 'MG손해보험 사태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청원이 등장해 이틀도 채 되지 않아 6000명 이상이 동의하는 등 가입자들의 불안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온라인에서는 피해자 모임들이 속속 만들어지며, 단체 채팅방을 통해 금융감독원 민원 제기 방법부터 청산 반대 시위 계획까지 다양한 대응 방안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일부 보험설계사들은 MG손보 청산이 확실하다며 계약 해지와 타 보험사 전환을 유도하는 등 가입자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공포 마케팅'을 벌였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즉각 불건전영업 행위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손해보험협회와 GA협회에 SNS·유튜브 등 온라인 광고물에 대한 점검을 요청했다. 또한 영업 현장을 통해 부당승환 사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위법 행위가 확인되는 즉시 중단을 요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국은 당초 청산 방안을 공식화했다. 지난 5월 MG손보의 신규 영업을 정지하고 가교보험사를 설립해 계약을 5대 주요 손해보험사로 이전하는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이는 2012년 저축은행 사태 때 활용된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대규모 인력 감축 가능성이 거론되자 노조는 전 직원 단식농성까지 예고하며 강경 투쟁에 나섰고, 이후 정치권의 중재로 금융당국과 노조가 절충안을 도출했다.

지난 6월 30일 금융당국과 예금보험공사, MG손보 노조는 '가교보험사 설립은 유지하되 우선 재매각을 추진한다'는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7월 1일 재매각 추진 방안이 공식 발표됐다.

합의안의 핵심은 새로운 실사 진행이다. 회계법인을 공개 입찰로 선정해 약 6주간 자산·부채에 대한 전산 실사를 다시 실시하기로 했다. 이는 노조 측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항이다. 노조는 기존 금융당국 주도의 실사가 MG손보의 재무 상태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평가했다고 주장하며 객관적인 재평가를 요구해왔다.

합의문에는 고용 안정성 확보와 기업 가치 재산정 방안도 포함됐다. 이는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직원들의 고용 보장 문제와 회사의 적정 가치 산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절충안으로 해석된다.

결국 금융당국은 청산 대신 매각 가능성을 다시 열어두었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 다섯 차례 매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고 건전성 지표는 여전히 최악 수준이기 때문이다.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삼성화재, DB손보, 현대해상, KB손보, 메리츠화재 등 주요 손보사들 역시 높은 손해율과 고용 부담을 이유로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계약 이전이 이뤄지면 기존 조건은 유지돼 소비자 피해는 크지 않겠지만 고령자 등 계약자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충분한 안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